[고교야구] 3안타·우승·MVP … 일기에 쓴 대로 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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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고 내야수 이인행(18·3학년)은 잠들기 전 일기를 쓴다.

제4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일간스포츠·대한야구협회 공동 주최) 결승전을 하루 앞둔 1일 밤에도 그는 펜을 잡았다. 론다 번의 『시크릿』을 통해 배운 ‘긍정의 힘’이 그의 손을 움직였다. ‘우리는 꼭 우승한다. 결승전에서 3안타를 친다. MVP는 내 차지다’. 하루 뒤 이인행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또 배웠다”며 웃었다. 팀 주장 이인행은 가장 먼저 대통령배에 입을 맞추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을 차지했다.

덕수고 선수들이 2일 상원고를 한 점 차로 꺾고 대통령배 2연패를 확정한 순간 마운드로 몰려나가 환호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덕수고는 2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대구 상원고와의 결승전에서 10-9로 승리했다. 지난 대회 우승팀인 덕수고는 또다시 정상에 오르며 경북고(1967~68년, 70~72년)와 서울고(84~85년)·부산고(99~2000년)에 이어 대통령배 2연패를 달성한 네 번째 학교가 됐다.

◆공·수·주 만점 활약=이날 결승전은 이인행이 자신의 장점을 모두 보여 준 경기였다. 1회 무사 1·3루에서 선제 2타점 2루타로 한 이닝 8득점의 물꼬를 텄다. 2회에는 3루 주자로 있다 1루 주자의 2루 도루 때 홈을 파고드는 민첩한 주루 플레이를 선보였다. 4회 희생 번트에 이어 6회에는 기습 번트 안타를 성공시키며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고교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유격수 수비도 안정적이었다. 이인행이 일기장에 적어 놓은 것처럼 3안타(4타수 2타점 2득점)를 쳐내는 맹활약 속에 덕수고는 상원고의 막판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이인행의 이번 대회 성적은 16타수 8안타(타율 0.500) 4타점 2도루. 대통령배는 그에게 MVP·수훈상·최다안타상을 선사했다.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은 “고교 3학년 중 야수 1·2위로 꼽힌다. 경기를 보는 시야가 고교생 같지 않다. 신체 조건(1m86㎝, 80㎏)도 좋다. 이번 대회를 통해 드래프트 상위 지명의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고 입을 모았다.

◆파이팅 넘치는 주장=이인행은 선수단 내에서도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항상 밝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다독이는 주장”이라는 게 김창배 덕수고 야구부장의 전언이다. 34명의 덕수고 야구부원 중 휴대전화를 가진 선수는 아무도 없다. 코칭스태프가 아닌 선수들 스스로가 만든 ‘자체 규율’이다. “운동부가 더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뜻에서 선배들이 시작한 전통에 대해 주장 이인행은 따뜻한 말로 후배들에게 ‘당연히 이어받아야 할 규율’임을 설명했다.

그라운드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몸을 내던지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선수도 이인행이다. 결승전 뒤에도 그의 유니폼은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야구공을 보면 그냥 뛰게 된다. 공을 잡기 위해, 한 베이스 더 앞으로 가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성남 희망대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장을 독차지하는 야구부원들보다 더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야구는 이제 그의 전부가 됐다.

하남직·허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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