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놀이공원등 설 나들이 '1백배 즐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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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황금의 설연휴가 돌아오지만 IMF한파를 맞아 집집마다 고민이다.

마냥 집구석에 눌러 있자니 가족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고, 나들이를 나서자니 기름값.숙식비가 부담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회사원 김용식씨 (44.서울 가양동) 는 생각하다 못해 지난주말 아내와 초등학교 다니는 남매 (4, 6학년) 를 데리고 지하철 (2, 8호선) 을 타고 롯데월드 (잠실역)에 갔다.

롯데월드하면 으레 첨단놀이시설만 떠올리지만 그가 찾아간 곳은 쇼핑몰 3층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그안에 저자거리가 있는데 무료입장구역이다.

저자거리 민속식당가에 들어서자 동동주.빈대떡.산적.족발.낙지전골.갈비.꽃등심.파전.막걸리등 장터 분위기가 절로 났다.

하지만 김씨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 막국수.순대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쌀로 튀긴 뻥튀기 한봉지씩 사들고는 저자거리를 샅샅이 훑었다.

울긋불긋한 물감을 찍어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림인지 글씨인지를 척척 그려대는 혁필 (革筆) 아저씨, 민간 한방상식을 구수하게 들려주는 한약방 할아버지, 오색줄무늬 눈깔사탕을 수북히 쌓아놓고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 김씨는 혹시나 하고 왔는데 뜻밖에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하자 자신도 어린시절 추억이 생각나 모처럼 신명이 났다.

김씨네는 골무.참빗.노리개.꽃신들이 있는 공예품 상가를 둘러보고, 물레방아 도는 초가집에서 예쁘게 기념촬영도 하면서 아주 즐거운 휴일을 보냈다.

그날 김씨가 쓴 돈이라고는 점심과 교통비를 합쳐 3만5천원. 수원에 사는 박영철씨 (47.학원강사) 도 지난 일요일 용인한국민속촌으로 가족나들이를 갔다.

처음에는 추운 날씨에 무슨 민속촌이냐며 식구들마다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막상 민속촌 안에 들어서자 마냥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특히 아이들은 민속촌 한가운데를 흐르는 시냇물을 얼려서 만든 얼음판에서 한나절 전통썰매를 신나게 탔다.

용인민속촌에서는 입장객들을 위해 전통썰매를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다.

박씨는 오랫만에 전통썰매 타는 요령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점심으로는 저자거리에서 따끈한 국밥을 먹었다.

박씨는 이날 입장료.점심값.주차비.기름값등 합해 4만원정도 썼다.

아이들은 "눈썰매나 스키 타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 며 다음 주말에 한번 더 오자고 보채기까지 했다.

요즘 나들이 풍속이 달라졌다.

연휴가 돼도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 장거리 여행을 나서는 이도 별로 없다.

연료비.숙식비가 만만치 않게 들자 이를 아끼려는 여행자들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대신 도심의 고궁이나 영화관, 근교의 놀이공원.박물관.민속관등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번 설날연휴도 예년에 비해 조촐하고 차분하게 지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설연휴에는 제기차기.윷놀이.투호.굴렁쇠등 민속놀이마당이 열리는 곳을 찾아가 가족이 함께 즐겨보자. 그리고 민속박물관을 찾아가 우리나라 세시풍속에 대한 공부도 해보자. 이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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