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아이어코카’ 꿈꾸며 대서양 건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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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28면

중병 든 이탈리아 피아트를 되살려낸 세르조 마르치오네와 피아트 누오바 500’(오른쪽 사진).

90년 전인 1919년 한 남자가 제너럴 모터스(GM) 회장실을 박차고 나섰다. GM의 계열사인 뷰익의 사장 월터 크라이슬러다. 그는 당시 최고 자동차 기술자였다. 주식게임이나 벌이는 GM의 윌리엄 듀런트 회장과는 맞지 않았다. 사사건건 충돌했다. 크라이슬러는 그해 GM을 떠났다. 6년 뒤인 1925년 자신의 이름을 딴 ‘크라이슬러를 설립했다.

美 크라이슬러의 CEO 내정자 세르조 마르치오네

이렇게 등장한 크라이슬러는 기술자가 세운 자동차 회사답게 최초로 ‘컴퓨터 제어 ABS(바퀴잠김방지제동장치)’를 자동차에 적용하는 등 적잖은 기술적 혁신을 이뤄냈다. 큰 심장(엔진)과 우람한 덩치(차체)를 자랑하는 차를 개발·생산해 ‘가장 미국적인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로 꼽혔다. 하지만 연료 효율이 낮아 고유가 파고를 타고 넘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 말 파산보호 절차를 밟는 신세로 전락했다.

미 자동차 중심지인 디트로이트에는 제2의 리 아이어코카를 고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는 2차 오일쇼크로 위기를 맞은 크라이슬러를 소생시켰다. 기대에 부응하듯 후보자가 한 명 떠오르고 있다. 이탈리아 피아트의 최고경영자(CEO)인 세르조 마르치오네(57)다. 그는 파산보호 이후 설립될 새 크라이슬러 CEO로 내정됐다.

그는 이탈리아 명품 정장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넥타이를 매지도 않는다. 버릇처럼 핏대를 올리며 입에 거품을 물고 떠벌리기를 좋아한다. 그의 별명은 허풍선이다. 2007년 “피아트가 GM이나 포드·크라이슬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그의 큰소리는 실현됐다. 요즘은 ‘마카로니 잭 웰치’로 불린다. ‘이탈리아의 잭 웰치’라는 의미다. 신자유주의 경영논리로 미 GE를 되살린 웰치처럼 그도 이탈리아 피아트를 소생시켰기 때문이다.

피아트식 경영전략 쓸 듯
크라이슬러는 이미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파산보호 절차를 거친다. 새로운 회사(새 크라이슬러)로 거듭난다. 주인이 미 사모펀드 서버러스에서 전미자동차노조(UAW)로 바뀐다. UAW가 지분 55%를 장악한다. 새 크라이슬러가 퇴직자들의 건강보험 부담금을 덜 내는 대신 UAW는 새 회사의 주식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분만큼 이사를 선임하고 정기적으로 경영 내용을 보고받는다.

새 크라이슬러 경영권은 이탈리아 피아트의 몫이 된다. 피아트는 새 회사 지분 20%를 사들이기로 했다. 2013년 이후에는 추가 지분을 사들일 수도 있다. 이 옵션을 행사하면 최대 51%까지 지분을 확대할 수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피아트는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도 된다.

새 회사의 나머지 지분 25%는 미국과 캐나다 정부에 돌아간다. 파산보호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급전 80억 달러 정도를 대주는 대가다.

새 크라이슬러의 모습은 오롯이 마르치오네의 손에 달렸다. 그는 기존 크라이슬러 자산 가운데 어떤 것을 사들일지 결정한다. 그는 지난달 30일 “원칙은 회사의 효율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라며 “수익을 낼 만한 자산만을 사들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미 소비자들이 외면한 대형차 생산라인을 최소화하고 연비가 좋은 소형차 라인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마르치오네는 피아트에 쓴 경영 전략과 노하우를 새 크라이슬러에도 적용할 전망이다. 그는 2004년 피아트 CEO가 됐다. 유럽 6위 업체인 피아트는 당시 만신창이였다. 마르치오네에 앞서 3년 동안 CEO 세 명이 거쳐갔다. 파산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이 회사 안팎에서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마르치오네는 “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왔다”고 공언했다. 그는 공격적으로 관리직을 줄여나갔다. 생산라인을 대거 통합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비용을 줄여나갔다.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철저하게 고객이 좋아할 만한 차를 만들어 내놓았다. 그 차가 바로 피아트 누오바500이다. 이 차는 2007년 유럽의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1년 만에 20만 대가 팔려나갔다. 마침내 피아트가 부활했다.

마르치오네는 CEO 취임 이후 피아트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독자성 원칙을 폐기했다. 과감하게 제휴해나갔다. 유럽 자동차 메이커 가운데 B급인 피아트가 일본과 한국 업체의 공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회사와 손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인도 타타와 손잡았다. 이어 크라이슬러와 제휴를 추진했다.

그는 피아트를 부활시키기 앞서 99~2001년 스위스 제약 관련 회사인 론차(Lonza)그룹과, 2002~2003년에는 호텔 등급 인증업체인 스위스 SGS를 되살려냈다. 비틀거리는 회사를 되살려내는 전문가인 셈이다. 그래서 요즘 디트로이트에서는 “마르치오네라면!”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그라면 크라이슬러를 소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장기 경쟁력 복원은 장담 못해
마르치오네는 이루기 힘들어 보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조직을 몰아가는 비즈니스 리더다. 이른바 스트레스 유발형 CEO다. 그의 이런 성격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쪽이 간부들이다. 그는 감색 스웨터를 입고 줄담배를 피우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피아트 간부들을 닦달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는 크라이슬러에서도 같은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철저하게 조직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새 크라이슬러의 표준말이 ‘이탈리아식 영어’로 바뀔 것이라는 예상이 나돌기 시작했다. 일부 전문가는 ‘양키(미국적) 크라이슬러’가 ‘스파게티(이탈리아식) 크라이슬러’가 될 것이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가 성공할까. 디트로이트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일 “크라이슬러가 마르치오네 지휘 아래 단기간에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피아트를 2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침체된 조직 분위기도 확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간 간부들의 발걸음이 빨라질 전망이다.

그러나 흑자 전환이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80년대엔 아이어코카가 크라이슬러를 흑자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후 일본과 한국 자동차의 공세에 밀려 고전했다. 미 소비자들이 반할 만한 새로운 차를 개발·생산하지 못한 탓이다. 끊임없이 좋은 차를 내놓을 수 있는 장기 경쟁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크라이슬러는 독일 다임러가 주인이 된 98년 이후 체력이 고갈된 상태다. 다임러와 2007년 경영권을 장악한 미 사모펀드 서버러스 모두 비용절감을 부르짖으며 새 차를 개발하기보다 기존 모델을 다듬어 우려먹었다. 이런 상태에서 마르치오네는 피아트의 소형차를 크라이슬러에서 생산해 살인적인 경쟁이 벌어지는 미국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미 소비자들이 크라이슬러가 만든 피아트 자동차를 살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CNN머니는 지난달 30일 “연비가 기존 미국 차보다 좋지만 비좁은 유럽 도시의 도로에 적합하게 설계된 피아트의 소형차들이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을지 아무도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르조 마르치오네 195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캐나다 국적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는 토론토대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MBA 과정과 로스쿨도 마쳤다. 변호사와 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스위스 금융그룹인 UBS의 사외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평소엔 피아트 소형차를 끌고 출퇴근하지만 주말에는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를 몰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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