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에 문학도량 '부악문원' 낸 이문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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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글 써서 번 돈을 문학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한자 한자 밤새우며 혼과 몸을 불태워 일군 그 모든 것을 문학에 돌려주는 그 배짱 인생이 실로 부럽고 존경스럽다.”

지난 17일 경기도 이천 설봉산 자락 산골 마을로 내로라하는 문인.출판인등 1백50여명이 찾아들었다.

작가 이문열 (李文烈.50) 씨가 지은 '문학서원' 부악문원 (負岳文院) 집들이에 참석, 긴 겨울 밤을 지새우며 축하와 문학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고향과 문단의 선배인 작가 김주영씨는 이씨의 문학적 자존심과 '배짱 인생' 에 존경을 나타냈다.

이씨가 이 곳에 터를 잡은 것은 지난 85년. 허름한 농가 주택을 구입해 집필실로 사용하면서 점차 확장시켜 국내 최초.최대의 개인 문학서원을 열게 된 것이다.

부악서원은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7백평에 강당 2개와 도서관 그리고 15개의 방을 갖추고 있다.

서울서 식솔을 모두 거느리고 이 곳에 온전히 정착한 이씨는 '제자' 원생들을 널리 모집해 그들과 함께 고전적 소양과 문학을 가다듬게 된다.

한 해 다섯명씩 뽑아 3년간 동.서양 고전을 익히게 하고 수시로 삶과 문학, 그리고 문명과 시국에 대한 토론도 벌여나가게 된다.

물론 일체 무료이고 대졸 학력 수준으로 문학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사람이면 2월15일까지 원고지 1백장 가량 장문의 자기소개서를 보내면 된다.

3년 정규과정의 원생들뿐 아니라 산골에 갇혀 세파를 잊고 글쓰기와 연구에 몰두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든 이 곳에 '식객 (食客)' 으로 머무를 수 있다.

이들을 위해 부악문원은 60명 가량의 잠자리와 식당.빨래방등 모든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0336 - 636 - 8861) “영원히, 혼자만 살 집은 이 지상에 없다.

내 한 몸 제대로 누이고 편안히 글 쓸 방 없어 보따리 하나로 이곳저곳 옮겨다니던 내 젊은 날의 궁상스러웠던 모습. 그 궁핍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조그마한 연못과 앞 뒤 뜰에 마춤한 집 한 채로 조용히 글 쓰며 한 가족 거느리고 살아도 호사스럽다는 말 안 나올 1천3백여평을 문학과 시인묵객들에게 내놓은 것이다.

“앞 뒷산 낮게 가로 막힌 고적함, 따뜻한 빈방들 그리고 뜰에서 장작불에 설설 끓고 있는 시래기국의 저 큰 가마솥만 보아도 절로 포근하고 배불러온다.”

경제적 한파로 원고료 수입이 뚝 끊겨 이 곳을 찾은 한 후배 작가는 선배작가의 문학적 '쾌척' 자체가 문학에 몰두할 힘을 주고 있다고 밝힌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아무도, 사라져 아름다운 시간 속으로, 그 자랑스러우면서도 음울한 전설과 장려한 낙일 (落日) 도 없이 무너져 내린 영광 속으로 돌아갈 수 없고, 현란하여 몽롱한 유년과 구름처럼 흘러가 버린 젊은 날의 꿈 속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79년 '사람의 아들' 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출세작가의 길로 들어선 직후 발표한 작품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마지막 부분이다.

고향 경북 영양은 李씨 집안의 3백년 세거지 (世居地) .유림 (儒林) 집안으로 선조가 세운 석계서원이 있었고 부친대까지도 천석꾼 살림이었다.

그러나 6.25 때 부친의 월북으로 이씨는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가난에 떠도는 삶으로 중퇴 없이 마친 정규교육 과정 하나 없었던 신산했던 시절과 영화로왔던 옛 고향을 둘러보며 제목처럼 고향에 못 돌아갈 운명을 감지하고 고별사를 고하는 심경으로 쓴 작품이었다.

그러나 핏속을 면면히 흐르고 있는 고향과 혈통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 지도상으로는 분명 다르지만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자랑스럽고 장려했던 전설 같은 고향을 이곳에 복원한 것이다.

석계서원을 부악문원으로, 지주로서 땅에서 나온 재원이 1천5백만권 판매부수의 국내 최대 작가의 인세로 바뀌었을 뿐이다.

“내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체험을 얻기 위해 미국에 체류할 생각도 가졌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꿔 작품을 차별화.특수화해 내가 세계로 나가는 대신 그들이 나를 찾아오도록하게 하고 싶다.

어떻게든 맥이 끊겨 미천한 한국문학의 전통을 다시 세우고 싶다.”

유림의 후손으로 후학들과 더불어 한국의 혼이 깃든 문학의 전통을 세우고 꿋꿋이 잇겠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유승우 이천시장은 “이 곳 뒷산이 아이를 업은 형상이라서 부아악 (負兒岳) 이라 불렸다” 며 “후학과 한국문학을 업어 키울 부악문원이 이천을 문학의 명소로 가꿀 것” 이라 기대했다.

이천 =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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