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로 읽는 사진이야기]下.예술사진의 모험(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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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928년 5월 파리. 사진만을 독립적으로 전시한 최초의 살롱 전에서 앙드레 케르테츠 (1898~1985) 의 사진 한 점이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 사진은 접시와 그 한 귀퉁이에 걸쳐진 포크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포크와 접시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작품을 할 수 있겠군” 하고 비아냥거렸고 또 다른 사람은 “물론 그렇게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벌써 케르테츠에게 선수를 놓쳤다네” 라고 맞장구를 쳤다.

당시 권위있는 주간 사진전문지 '르 뷔' 는 이 사진이 전시회를 통틀어 '유일한 순수 예술작품' 이라고 극찬했다.

단순하고 평범한 물건에서 놀랄만한 아름다움을 찾아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케르테츠의 사진을 계기로 사진가들은 드디어 화가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됐다.

그리고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사진만의 미적 세계를 찾아나설 수 있게 되었다.

초창기의 사진가들은 사진 영상만이 갖는 고유한 미적 영역을 확보하는데 꽤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전 조각을 촬영하거나 걸작 회화를 사진으로 복제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사진의 독자성을 확보한 분야가 '누드' 였다.

화가들은 실제 모델을 고용하는 대신 사진을 이용함으로써 제작비를 줄일 수 있었고, 사진가들은 화가의 안목에 따라 인체를 관찰하고 재현함으로써 그림의 세계와는 또 다른 신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됐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었다.

사실상 우리가 걸작으로 칭송하고 있는 낭만파 화가들의 거창한 인체는 르네상스 미술에서처럼 화가의 스케치북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에 찍힌 영상을 그림으로 옮긴 것들이었다.

화가들은 여전히 사진을 그저 밑그림을 위한 자료 정도로밖에 대접하지 않았지만 쿠르베를 비롯한 들라크루아.앵그르 같은 대가들의 손에 의해 그려진 영원불멸의 여인들도 실은 줄리앙 발루 드 빌르뇌브.피에르 프티 같은 사진가들이 찍은 누드 사진들이 없었더라면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 추상미술의 탄생 또한 사진의 덕을 단단히 보았다.

추상미술 탄생에 대한 영예를 서방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화가 칸딘스키가 독점하고 있기는 하지만 추상미술 초창기 비행기와 사진이 맡았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비행기와 사진을 추상미술로 연결시킨 화가는 러시아 혁명기에 활동했던 카지미르 말레비치 (1878~1935) 였다.

1914년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그가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듯한 광대무변한 대자연이었다.

지상에서 두 발을 딛고 보는 것과는 달리 성냥갑처럼 작게 변해버린 풍경과 세상을 보면서 그는 마치 스스로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때의 감동을 말레비치는 자질구레한 세부 묘사를 모두 제거하고 흑과 백의 사각형으로만 구성된 그림으로 옮겨놓았다.

비구상 회화로 대표되는 현대미술의 거대한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사진과 더불어 미의 세계는 끊임없이 확장됐다.

1880년대 파리 경시청 소속 사진사로 일하던 알베르 베르티옹은 범법자들의 신체 측정용 사진을 전담하고 있었다.

세상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녔던 범법자들의 용모나 인상은 일반인들과 달리 쉽게 변하거나 일그러지게 마련이었으므로 그는 전신사진뿐 아니라 범법자의 각 신체부위를 수만 점에 달하는 사진으로 기록해두었다.

80년대 후반 이 사진이 파리 시립미술관에서 공개되었을 때, 관객들은 하나의 소재가 그토록 다른 모습과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당초 예술을 목표로 작업하지 않았던 사진도 미술관에 걸리면서 다른 매체들이 보여줄 수 없는 참신한 미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을 사진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뒤센 드 불로뉴가 찍어놓은 사진은 신의 울음은 물론 악마의 웃음까지도 추적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마저 가능케 했다.

환자의 용태를 관찰하기 위해 그는 전기충격을 가하면서 그 반응을 체계적으로 사진에 담았다.

사진에는 얼굴의 반은 웃고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울고 있는 그런 표정이 담겨있다.

일상 속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고통 그리고 신경질적 반응 등 깊이 감춰진 표정이 사진에 의해 기이한 형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앙리 마케로니가 1969년부터 4년에 걸쳐 해낸 작업은 90년대 중반 겨우 발표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스캔들이었다.

그는 한 여성과 계약 아래 그 여성의 성기만을 클로즈업한 사진 2천 장으로 한 폭의 방대한 벽화를 제작했다.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대담한 시선 앞에서 당혹감.수치심과 함께 호기심과 찬탄도 쏟아져 나왔다.

돈 주앙은 수많은 여인을 수집했지만, 그는 한 여인으로부터 2천의 다른 여인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성기의 변화무쌍함은 차라리 숭고해 보일 지경이라고 한 평자도 있었다.

현대 사진은 이렇듯, 보아서도 안되고 또 보여주어서도 안되는 숨겨지고 억압된 세계까지 가차없이 폭로하려 한다.

오늘날에는 철거 직전의 건물을 찾아다니며 그 현장에 그림과 메시지를 그려넣은 다음 사진으로 남기거나 낙엽을 모아 조각품을 만들고 사진을 촬영하는 등으로 현실에 개입하면서 사진의 예술적 기능을 시험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러나 예술을 추구하는 사진가들은 누구나 사진이 하나의 논픽션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고, 이 논픽션에 허구적인 상상을 덧붙이는 데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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