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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보이지 않는 손의 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다녀와서 지금 이렇게 힘든데, 당장이라도 다시 한국 정부가 너 우주정거장에 가야 한다고 하면 가겠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지!”라고 대답했지만 나 혼자의 대답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닌, 함께했던 모든 사람이 모두 “당연하지!”라고 대답해 주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선발에서 훈련, 실제 비행까지는 너무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다. 우주에 다녀온 지 1년이 되었단 사실에 놀라며 막연히 우주비행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사람들을 무작정 세어보자 맘 먹었고, 여기저기 전화까지 해가면서 찾아보니 국내에만 500명이 훌쩍 넘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발사 전, 관련된 러시아분들께 드리기 위해 사인을 했던 사진이 1000장 이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미국과 일본까지 포함해 한국 최초 우주비행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의 수는 2000명도 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이 선수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의 우주비행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수천 명은 물론, 매일 저녁 TV 앞에서 응원해 주셨던 수많은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단 우주 비행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 주었던 우리나라표 휴대전화, 자동차, 아파트들 또한 눈에 띄는 몇몇 분들에 의해 이뤄진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읽었던 페인트칠하는 분의 기사는 다시 한 번 보이지 않는 곳의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했다. “교각의 뒷면에 주기적으로 페인트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너무나 위험한 일인데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 것 같은데, 왜 이 일을 하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제가 아니면 이 교각은 부식되어 무너질 테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이런 분들이 없다면 날마다 출근길에 타는 지하철도, 건물을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도, 편안하게 앉아 볼 수 있는 텔레비전도, 주변의 수많은 당연한 것들을 우리는 누리기 힘들 것이다.

우리를 흐뭇하게 하는 김연아 선수의 뒤에도, 세계 평화를 위해 1년에도 지구를 몇 바퀴씩 돌아야 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의 뒤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분들의 노고가 의심할 여지 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름마저 외로운 고흥 외나로도에서 대한민국 최초 로켓을 발사하기 위해 땀을 흘리는 분들이 계신다. 우리나라 우주과학 분야에서 우주인보다도 훨씬 중요한 분들이지만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죄송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붉은악마 응원단은 월드컵팀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축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 선수들, 문화예술계, 정치·경제,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는 과학기술계 등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분들에게도 기적적인 4강을 이끄는 붉은악마 응원단이 생기면 좋겠다. 그리고 그 멋진 응원은 경기장에서의 붉은 티셔츠 차림이 아니라, 지금 각자 자리에서 격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이소연 우주인·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