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10대 한국병]7.후진적 세제·세정…지하경제 키운 불평등과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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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하경제' 와 '부정부패' 는 우리 경제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 존재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세정과 세제를 크게 손봐야 한다.

지하경제의 7할 정도가 탈세에 의한 것이고, 탈세된 돈의 상당분이 다시 부정한 곳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탈세 규모를 줄이는 것이 지하경제를 줄이는 길이요, 부정부패의 악순환을 끊는 지름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부가가치세.소득세 과세를 강화해야한다.

이자.배당 소득과 법인소득 등 자본소득 과세를 약화시키는 대신, 상속.증여세 과세 강화를 통해 자본소득 과세의 약화를 보완하고 차입금 경영 우대조치를 점차 폐지하여 세율 인하를 통한 법인소득의 과세 약화를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정개혁을 위해 조세청을 발족시켜 세무서 조직과 지방자치단체 징세조직을 대폭 개편, '경제 경찰' 로서의 기능을 대폭 강화시키고 징세비용도 낮춰가야할 것이다.

부정부패는 지난 40여년 동안 우리 경제 사회의 기틀을 흔들어온 암적인 존재였다.

만성 간염과 같은 지하경제는 부정 부패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고 또 둘은 세제.세정과 곳곳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한국병' 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세금을 제대로 거둬야 할 곳에서 거두지 못해 형성된 것이 '지하경제' 이고, 옳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뒷거래하는 것이 '부정부패' 다.

부정 거래로 발생한 소득은 상당량이 지하경제로 파묻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양자는 끊기 어려운 고리로 단단히 얽혀 있다.

따지고 보면 YS의 대선 자금과 같은 정치 자금의 대부분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돈이며, 한보의 정태수 회장이 유용한 수조원의 돈도 회계장부를 조작하여 빼돌리거나 이윤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법인세를 물지 않은 돈이다.

한보.진로.기아등 방만하게 운영된 기업과 그들의 거래처인 금융기관은 구린 거래로 묶여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상식을 초월하는 부채비율을 지녀 상환능력이 의심스런 기업에 자금이 줄곧 흘러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다.

우리 가계의 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있는 사교육비도 부정부패, 그리고 지하경제와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뒷거래된 수표의 최종 사용자가 학원 강사나 교사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각종 이권에 깊숙히 간여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법조계도 예외가 아니다.

예외가 아니라기 보다 커다란 지하경제를 형성하여 무시로 부정부패가 횡행하고 있는 부문이라는 표현이 더 들어맞을지 모른다.

인신의 구속, 재산 상실이라는 위험에 처해 약한 입장에 있는 이들을 상대로 변호사들과 브로커들은 '부르는게 값' 일 정도의 높은 착수금과 수가를 받고 있다.

이들이 재판 과정에서 판.검사들에게 줄을 대 '정실에 기운 판결' 을 유도해 낸다는 것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들 변호사가 긁어 모은 돈 중 신고되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처럼 여기 저기서 세원이 새나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국세청과 지방 자치단체가 매년 세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오히려 용하다.

바꿔 생각하면 공식적인 소득으로 파악되지 않고 정상적인 상거래로 포착되지 않는 분까지 꼼꼼히 잡아내어 과세한다면 기존 납세자들의 세부담을 그만큼 줄여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가 부정부패와 지하경제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하경제 규모는 연구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국민총생산 (GNP) 의 8~20% 규모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의할 사실은 급행료.돈봉투 등의 각종 뇌물이 곧 바로 지하경제로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은 받은 자의 소비로 나타나 GNP 추계 과정에서 포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이 불공평하면 납세자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옛부터 세금을 운영할 때 지켜야 할 최대의 가치기준으로 공평성이 강조됐다.

공평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많이 번 사람에게 세금도 그만큼 많이 매겨야 한다는 '수직적 공평' 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직업으로 번 돈이건 간에 번 돈의 크기가 같으면 세금도 같게 매겨야 한다는 '수평적 공평' 이다.

두개의 잣대 가운데 그동안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고려돼왔던 것은 수직적 공평이다.

따라서 소득세 구조가 누진 세율 구조를 지녀왔고, 일정 소득 이하의 사람들은 비과세 대상자로 구분해 왔다.

현행 소득세율 체계인 10%에서 40%까지의 4단계가 심하다면서 세율을 더 낮추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유는 많이 버는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에 근로자의 세부담을 깎아 주자는 것이다.

수평적 공평에 주목한 주장이다.

물론 이는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 아니다.

올바른 개편방향은 자영업자의 세부담을 늘리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근로자의 세부담이 담세력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하경제의 대종을 이루는 것이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라는 지적에는 이견이 많지 않다.

이들은 도대체 얼마나 세금을 포탈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자료와 연구는 구하기가 쉽지 않으나 최근 들어 몇몇 연구가 행해졌다.

한 연구에 의하면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간의 소득세 부담 격차는 평균적으로 4배, 고소득층에 있어서는 10배에 달하고 있다.

이자.배당소득과 법인소득같은 자본소득에 어떻게 세금을 매겨야 하느냐는 문제도 중요한 과제다.

자본소득을 엄하게 과세하는 금융실명제와 금융소득 종합과세하에서도 사채시장이 상당 정도 남아 있었다.

은행의 예.적금과 채권 구입 등으로 제도권에서 돈을 굴리면 세금을 떼이기 때문에 세금 한푼 안내고 고금리를 받을 수 있는 사채시장으로 돈이 몰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국이 사채시장을 단속할 힘을 지니고 있다면 문제가 다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채시장 단속이 어렵다면 제도권의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을 낮춰 자금이 제도권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요즘은 자본 시장이 개방돼 높은 세금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지 못할뿐 아니라 우리 자본까지 해외로 빠져 나가게 한다.

결국 이자.배당 소득 등의 자본소득을 근로소득과 무차별하게 과세하는 종합과세는 지하경제의 규모를 늘리고 자본의 해외유출을 가속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 우리에게 적합한 조세 정책이 될 수 없게 됐다.

이는 '소득색깔론' 이 설득력을 지니게 됐음을 뜻한다.

소득색깔론이라 함은 각종 소득의 색깔이 같다고 볼 때에는 종합과세, 색깔이 다르다고 볼 때에는 분리과세가 합당하다는 주장이다.

자본소득을 약하게 과세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즉 저축 증대이다.

주택보급율 향상.각종 연금 제도의 정비.인구의 노령화로 최근들어 가계 저축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지하경제를 단속하고 부정부패를 뿌리뽑는 것 못지 않게 높은저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개방 경제하에서 수평적 공평성은 제한적으로 밖에 고려될 수 없다.

그러나 상속.증여세 과세를 강화하면 부모 세대의 부가 자녀 세대에게 넘겨져 발생하는 인생 출발선상의 불공평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다.

또 차입금 경영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세율 인하를 통한 법인세 과세 약화를 보완할 수 있다.

세제 못지않게 뜯어고쳐야할 것이 바로 징세행정이다.

탈세 행위로 지하경제가 형성된다고 할 때 그 과정에 개재되는 것이 부정부패다.

따라서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면 탈세에 직접 개재돼 있거나 방조하는 조직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3만여명에 달하는 기존의 징세 인력이 심기 일전해서 분발하면 부정부패의 상당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를 하기에는 기존의 유착관계가 너무나 강하다.

따라서 더러운 피를 뽑아내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면서 혈액순환 계통인 세무행정분야를 손보지 않고서는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것이다.

<대표집필=배준호 한신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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