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에이젠슈테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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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05년 여름 러시아 흑해함대 포템킨호 수병들은 선상 (船上) 반란을 일으켰다.

장교들의 포악과 불결한 급식이 주된 원인이었다.

수병들은 장교들을 바다에 집어던지고 배를 차지했다.

포템킨호가 오데사항 (港)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환호를 보내고 수병들과 힘을 합쳐 정부군에 항거했다.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1917년 러시아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포템킨호반란은 영화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1925년 포템킨호 반란을 소재로 영화 '전함 (戰艦) 포템킨' 을 제작했다.

에이젠슈테인은 이 영화에서 몽타주이론을 바탕으로 철저한 로케이션과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했다.

특히 시민들의 공포에 질린 얼굴과 차르군대의 장화가 클로즈업되면서 겹쳐지는 유명한 오데사 계단 학살장면은 그 후 수많은 영화에서 모방됐다.

'전함 포템킨' 은 영화제작에 있어서도 하나의 전설로 남아 있다.

단 한 사람의 직업배우도 쓰지 않았으며, 오데사 시민들이 직접 출연했다.

또 감독 자신이 영화의 한 배역을 맡아 출연했다.

오늘날 '전함 포템킨' 은 무성영화의 최고 걸작중 하나로 손꼽힌다.

나치 독일의 선전상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독일 영화인들에게 "우리의 포템킨을 만들라" 고 독촉했으며, 무성영화 스타였던 찰리 채플린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 라고 찬사를 보냈다.

영국의 문호 버나드 쇼는 '전함 포템킨' 을 보고 "영화미학적으로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작품" 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미국의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도 라파엘이나 루벤스의 그림처럼 모든 영화학도들이 모사 (模寫) 하면서 배워야 할 영화예술의 전형이라고 칭찬했다.

오는 23일은 에이젠슈테인 탄생 1백주년 기념일이다.

또 올해는 에이젠슈테인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 되는 해다.

세계 각국 영화계에선 그를 추모하는 갖가지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한 예로 영국 런던의 내셔널 필름 시어터에선 1월 한달을 '에이젠슈테인의 달' 로 정하고 그가 남긴 전 작품을 상영중이다.

그의 활동무대였던 소련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예술은 죽지 않고 살아 남았을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진가 (眞價) 를 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의 생명은 정치보다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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