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신약 국내환자엔 '그림의 떡'…개발돼도 5년 지나야 시판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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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효능이 입증된 해외신약의 국내도입기간이 지나치게 길어 국내환자들이 심한 불편을 겪고 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식품의약국 (FDA) 의 공인을 통해 부작용이 철저히 검증된 신약이라도 국내에서 시판되려면 3~5년이란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에 의해 2천년대 가장 각광받는 신약의 하나로 선정된 골다공증 예방치료제 포사맥스의 경우를 보자. 이 약은 비호르몬계열 약물이므로 여성호르몬과 달리 유방암 걱정에 시달리지 않고 하루 한번 복용으로 골다공증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93년 이탈리아에서 개발돼 95년 FDA의 공인까지 거친 이 약물의 국내상륙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해외에서 공인된 신약이라도 국내시판허가를 얻기 위해선 최초 개발지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판매된지 최소 3년은 경과해야한다는 국내규정 때문이다.

포사맥스의 경우 최초 개발지가 아닌 첫 시판허가국가는 94년 9월 멕시코.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선 97년 9월 돼서야 국내시판허가가 내려졌다.

그러나 허가 후에도 원료의 제조와 판매까지 소요되는 1년여 기간을 감안하면 첫 개발이후 5년이란 기간이 지난 98년 9월이라야 비로소 국내여성들의 복용이 가능하다.

3년을 기다리지 않으려면 국내환자들을 대상으로 따로 임상시험을 거쳐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받아야한다.

그러나 임상시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환자들의 참여가 저조한데다 복잡한 행정절차로 이것 역시 쉽지 않다.

B형간염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해 활동성 B형간염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라미뷰딘이나 인슐린호르몬의 감수성을 증대시켜 혈당을 떨어뜨리는 신개념 당뇨치료제 레줄린 모두 국내환자를 위해 시급히 도입돼야함에도 아직 임상시험 대상환자나 병원을 물색조차 못한 상태다.

외국의 경우 대체로 국민보건을 위해 필요한 약물이라고 인정되면 신속한 심사과정을 통해 바로 도입하고 있다.

라미뷰딘의 경우 아직 FDA 공인이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B형간염환자가 많은 중국에선 이미 모든 임상시험을 완료하고 올해초 시판승인을 앞두고 있다.

올해초 미국에서 공인된 레줄린도 1년이 안돼 일본과 영국에서 시판허가가 내려져 80여만명의 환자들이 처방받고 있다.

국내 해외신약도입이 더딘 이유는 임상시험절차에 관한 국내법령이 대부분 해외신약의 도입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의 것을 모방했기 때문. 해외신약도입에 일정기간 유예를 둠으로써 자국제약업계의 시장보호를 꾀하고 만에 하나 인종적 차이로 인해 외국인에게 나타나지 않은 부작용이 국내인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논리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신약개발여건을 갖추지 못한 국내제약업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시장보호를 위한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일본의 경우 시급하다고 판단되면 절차를 최소화하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 이같은 탄력적 운용도 없는 상태. 까다로운 신약도입절차는 오히려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국내구입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틈타 외국여행시 몰래 갖고 들어오거나 남대문시장등 보따리 장수에게 비싼 값을 치르고 음성적으로 구입하기 일쑤라는 것. 단순건강보조식품인 멜라토닌이나 DHEA의 경우 불법구매시 입게 될 건강피해는 미약한 편이지만 레줄린이나 라미뷰딘 등 외국에서도 의사의 처방하에 구입이 가능한 치료제들을 함부로 자가복용할 경우 자칫 예상치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서울대의대 약리학 신상구교수는 "국민보건 차원에서 현행 해외신약의 국내도입기간과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고 강조했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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