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구하기에 숨가쁜 한국, 월가 '한몫잡기'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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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5일 뉴욕 J P 모건의 본사 회의실. J P 모건을 위시해 시티은행.체이스 맨해튼 등 월가에서 내로라하는 12개 금융기관 대표들이 모여 한국 지원문제를 논의했다.

J P 모건의 고객담당 임원인 어네스트 스턴은 "우리는 멕시코 사태 경험도 있고 해서 연말연시를 이용해 계획안을 한번 만들어본 것이다.

결코 독식 (獨食) 하자는 게 아니다" 고 입을 열었다.

한국에 대한 작업을 자신들의 안 (案) 대로 밀고 나가려 한다는 일부의 반발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체이스 맨해튼의 맥도널드 이사가 "이번 대책은 자발적.포괄적이고 서로에게 대등한 것이어야 한다" 고 말을 받았다.

장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국의 채무재조정 작업을 둘러싸고 월가 금융기관들은 최근 치열한 상호 견제 및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채무재조정 작업은 엄청난 '머니 게임' 이다.

소시에테 제네랄 증권사의 경영 부책임자인 마르크 푸아리에는 "미 재무부 채권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저금리 시대를 맞은 월가에 사상 최대 규모의 장 (場) 이 서는 셈" 이라고 설명했다.

D증권의 한 관계자는 "만약 한국이 2백50억달러어치의 채권을 발행할 때 주간사 (리드 매니저) 를 맡으면 수수료 수입만 1억달러를 훨씬 넘을 것" 이라고 말했다.

채권 인수 수수료는 보통 발행금액의 1%를 받는다.

신용도가 좋은 양키본드의 경우 0.7% 안팎, 정크본드는 2~3%까지 받는다.

대외 신용도가 추락한 한국의 경우 2%를 받는다고 치면 인수 수수료는 모두 5억달러. 신디케이트 론의 경우 보통 10여개 대형은행이 주간이 돼 참여 은행들을 모은다.

미국계 C은행 관계자는 현재 한국 상황이라면 3년간의 대출 조건으로 조달금액의 1% 정도를 커미션으로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50억달러의 신디케이트 론을 조성할 경우 주간 은행들엔 보통 4천만달러 정도가 돌아간다.

신디케이트 론에 참여할 정도의 은행들이라면 보통 '리보 (런던은행간 금리 : 연 5.7%선) +0.1%' 정도의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한 신디케이트 론의 금리는 '리보+5%' 정도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금리차로 인한 순수익만 4.9%다.

한국의 채무재조정 작업에는 이처럼 한국의 국부 (國富) 를 허물어 월가의 금융기관들에 건네주는 아픔이 서려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스스로 치러야 할 뼈아픈 대가다.

결코 월가의 '돈 장사꾼' 들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빚을 못갚는 곳에 오히려 돈을 더 대주는' 비상식적인 행위는 고수익에 대한 기대없이 어차피 될 일도 아니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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