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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수 왜 번번히 놓치나…공명심에 눈멀어 공조 외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경찰마저 정부 경제팀을 닮아가나. ”

“경제는 그렇다 치고 탈옥수를 코앞에서 놓치는 등 치안마저 불안하니….”

무능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요즘 경찰의 모습을 보며 대부분의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이다.

최근 사회불안이 증폭되면서 가뜩이나 해괴한 범죄가 날뛰고 있는데 정작 '시민의 파수꾼' 임을 자임하는 경찰이 '자기 밥그릇' 에만 열중하며 무책임.무소신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탈옥수 신창원 (申昌源) 의 추적과정에서 보여준 경찰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경기경찰청 형사기동대 김병록 (金秉錄) 경사 등 2명은 '申이 충남천안에서 동거녀와 만난다' 는 정보를 입수하고도 정작 충남경찰청이나 천안경찰서에 알리지 않고 출동했다가 잡기는커녕 총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도주 장소 바로 앞 파출소직원들이 申이 도주한지 30분이상 지나서야 알았을 정도다.

경찰은 이미 지난해 10월, 12월 말에도 똑같은 실수를 범했다.

공명심에 눈이 멀어 공조수사를 외면한 채 한두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다 잡을 뻔한 탈옥수를 코앞에서 놓치고 만 셈이다.

경찰의 구태 (舊態) 는 지난 7일 대전 경원관광호텔 폭력배 난동사건에서도 드러났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호텔 커피숍에서 폭력배들이 집기를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 사이 같은 호텔 룸살롱에서 관할경찰서 형사들이 폭력배 행동대장과 어울려 '주거니 받거니' 한껏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 이후 온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장롱속에 묻어둔 금붙이까지 내놓고 있는 판에 사법공무원들이 범죄자들과 어울린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들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경찰 수뇌부의 모습은 국가부도 사태에도 “내 탓이오” 하는 사람 하나 없는 정부 경제팀처럼 더욱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경기경찰청은 지난해 12월30일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탈옥수를 붙잡으려다 실패한 말단 경관 2명만 해임조치했다.

또 충남경찰청은 폭력배들과 어울린 형사 2명을 직위해제하고 관할서장에 대해 가볍게 경고했을 뿐 별다른 지휘책임을 묻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경찰 내부에선 이런 구태와 실수를 “권력이양기에 벌어지고 있는 전형적인 기강해이” 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권교체의 혼란속에서 경찰 수뇌부들은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 당선자측에게 '선 (線)' 을 대려 혈안이고, 일반 직원들의 근무기강은 풀어질대로 풀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12월에 예정돼 있던 경찰 정기인사가 차기 정권측의 요청으로 연기되면서 내부의 지휘명령체계에 구멍이 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관계 (官界) 의 인원감축이나 조직개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면 '수술 1호' 로 주목될 수밖에 없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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