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네·아노·베송 감독등 잇단 영화실험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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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프랑스 감독들의 독특한 감각과 초대형 영화제작 자본과 체계가 만나 만들어낸 작품들이 영화의 신종으로 자리잡을수 있을 것인가.

할리우드의 대자본 가운데 하나인 20세기 폭스사는 이미 나올 이야기는 다 나왔다고 생각했던 '에일리언 4' 를 부활시키는 중책을 '델리카트슨 사람들' 의 감독 장 - 피에르 쥬네에게 맡겼다.

또 일단의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산처럼 높은 동양의 정신적 가치를 캐내는 데에 장 - 자크 아노의 감각을 높이 사서 난산끝에 '티베트에서의 7년' 이란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레옹' 으로 장 레노를 이끌고 뉴욕 맨해튼에 진출했던 뤽 베송은 이제 어눌했던 영어적 감각이 완전히 미국화된 듯하고 거대 예산의 SF영화 '제5원소' 로 세계적인 흥행성공도 성취했다.

이처럼 비교적 널리 알려진 프랑스 감독들이 잇달아 영어권 영화 대작에 손을 대는 것이 일종의 조류가 될지도 모른다.

동어반복적인 세계관과 영상감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미국 작가들이 아닌 대안을 찾는 거대 영화자본과 세계시장 공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프랑스 영화인 사이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들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시각적 요소를 독창적으로 개발해내는 것과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 미국적 가치관이 간과하기 쉬운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그리움' 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우연일지 모르지만 이야기 구조나 작품자체의 논리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부정적인 공통점에서도 예외가 없다.

10일 한국에서 개봉하는 '에일리언 4' 의 경우도 '제5원소' 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비롭고 특이한 영상을 보는 즐거움을 추구해야지 아기자기하게 이야기가 엮어지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신부 (Father)' 라고 불리는 우주 항모 "아우리가" 에서 영화의 대부분이 진행되는 '에일리언 4' 는 첫 장면부터 끝까지 '델리카트슨 사람들' 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의 영상감각을 대번에 느낄수 있다.

더구나 항모의 미로에서 총질을 해대고 피범벅이 되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세기말의 컴퓨터 게임 히트작 '둠' 에 참가한 것에 다름아니다.

그러니 이야기 흐름에서 감동을 기대하는 것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에일리언' 의 여전사 리플리의 부활과정, 대형 컴퓨터를 움직이는 리모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위노나 라이더의 돌출적인 등장, '제5원소' 에서 공간을 둥둥 떠다니며 아파트 베란다에서 국수를 파는 미래의 포장마차, '티베트…' 에서 신비로운 달라이라마와의 교감 등 부분적인 의미를 반추해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제5원소' 에서 어떻게 수천 광년이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제5원소가 단순한 사랑이라는 것 등에 대해 굳이 SF 지식을 동원해 따져보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다.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각과 제멋대로의 의미 연결로 관객들에게 호소하려는 영상스타일리스트들이 거대 영화제작 체계와 해후한 셈이다.

이러한 영화들에 대해 장 - 폴 레오 주한프랑스대사는 "세계화.지구촌화되는 데에 가장 손쉬운 문화 부문이 영화이므로 프랑스 감독들이 어떤 환경에서든 진정한 휴머니즘이나 범세계적인 가치관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면 앞으로 많은 작품들을 기대할수 있다" 고 설명했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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