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스타 CEO④- 윤정일 민족사관고 교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교육 스타 CEO④- 윤정일 민족사관고 교장
“펀드레이저 도입… 학교 발전기금 유치할 터”

윤정일(66) 민족사관고 교장은 ‘사학주의자’다. 사학의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 보장을 강조해온 교육학자다. 그는 언론 기고와 저서에서 “우리나라 고교 및 대학 교육의 70%를 사학이 차지한다. 사학의 발전 없이는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사학에 대한 지원책 마련을 주장해왔다. 벌써 20여년 전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민족사관고와의 인연도 예정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민족사관고의 하드웨어가 최명재 이사장의 손으로 빚어졌다면, 소프트웨어는 윤교장의 철학으로 짜여졌다. 그가 서울대 교수 시절 민족사관고의 발전 계획에 깊은 자문을 해준 것이 교장취임의 연으로 이어졌다.

Q.지난 2003년 교수 시절 ‘자립형사립고의 발전방안연구’ 용역을맡아 민족사관고 운영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민족사관고 발전계획안을 수립해 학교측에 33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 가운데 23개가 도입돼 운영중이다. 교과통합교육과정, 수준별로 수업을 듣는 무학년제, 영어와 수학의학습수준을 측정하는 영·수 이수인증시험, 무감독시험, 심리상담전문가 운용, 교감직 철폐 부교장 2인 체제로 전환, 교원안식년제 도입, 입학관리부 확대 등이 있다. 나머지 아이디어들은 최근의 교육상황 변화에 맞춰 도입을 검토할 것이다.”

Q.교육계에서 사학의 자율성 보장을 강조해 온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제시한 방안들은 어떤것이었나.
A:“예체능·과학·외국어 등 특정분야와 영재교육 분야에서 교육당국이 사학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학의 교육과정과 운영의 자율성 보장, 이를 위한 사립학교 육성법 개정, 사학 교원에게 전문직 임용 등 공립학교 교원과의 동등한 기회 부여, 국고 지원이나 세제 우대 혹은 기부금 유치를 통한 사학재정의 안정적 확보 허용 등을 제안했다. 3년 전에는 교육시장 개방에 대비해 우리나라 교육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립형사립고의 확대도 주장했다.”

Q.그 같은 교육철학을 갖고 교육현장에 발을 디뎠는데, 보이지 않는 수많은 규제와 제약으로 학교 운영의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A:“학교법인의 재정이 영세하고정부의 재정지원도 빈약한 상황에서 사학의 주된 재원인 납입금도 평준화와 물가 정책의 규제를 받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일본도 평준화를 시행하지만 사학교육을 평준화로 묶어 놓진 않는다. 등록금도 자유롭게 책정토록 허용해준다. 예전엔 신일고·서라벌고 등 강북 학교들이 최고의 학교였다. 그런데 평준화에 묶여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정부는 사학과 공학의 개념을 달리해야 한다. 사학은 자율성과 수월성을, 공학은 공공성과 평등성을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자립은 사학의 기본권이다. 정부가 자율학교 등을 운운하며 마치 선물을 주는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

Q.민족사관고는 자립형 사립학교다. 재정이나 교육과정 운영에서 교육당국의 간섭 없이 자율적이지 않은가.
A:“그 속에 바로 불평등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족사관고에 한푼의 국고지원도 없다. 그런데 학부모들에게서는 교육세금을 걷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가 다니는 민족사관고에는 걷어간 세금이 환원되지 않는다. 민사고 학부모가 낸 세금이 자신과 상관없는 학교의 시설개선과 교원봉급으로 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는위헌이다. 대한민국의 교육평등에 어긋나는 행위다. 기회균등에 어긋나는차별이다. 세금을 학교에 지원할 것이아니라 학생 개인에게 지원해야 한다.학생이 그 돈을 갖고 사학과 공학 중선택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선진국들이 바우처(Voucher)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Q.후원기업이던 파스퇴르가 지난 2004년 한국야쿠르트로 넘어간 뒤 학교의 재정 부담이 커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민족사관고의 교육철학 구현이 어렵지 않겠냐는 걱정도있다. 그런 와중에 교장으로 발탁됐다. 학교가 교육재정을 전공하고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장을 역임한 이력에 기대를 건 것 같다.
A:“교육법이 자립형사립학교의 납입금은 주변 지역 공립학교 납입금의3배 이상을 받지 못하게 한다. 또 학생 15%에게 장학금을 주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대 25%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다만 학교시설 건립 계획이 지연되고 있다.재정을 확보하지 못해 여학생기숙사,종합교육관 등을 완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펀드레이저를 둬 개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기부금을 유치할 계획이다. 교육철학은 변함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조국관·민족관·역사관을 바탕으로 세계지도자 양성에 주력할 것이다. 다만 사회 변화에 맞춰 리더가 갖춰야할덕목과 의식, 행동의 교육 내용이 다소 바뀔 뿐이다.”

Q.개방형자율학교, 자율형사립학교 등 다양한 유형의 학교 설립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교입시정책도 바뀌었다. 이 때문에 민족사관고의 색깔이 희석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A:“전기 모집에서는 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 등 한 곳만 볼 수 있게 됐다. 불합격하면 다른 특목고에는 지원할 수 없고, 후기 모집을 하는 일반고에 지원해야 한다. 학생들의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이 때문에 진학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들의 발걸음이 늘어났다. 이는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던 현 정부의 방향과 어긋나는 처사다.자율과 경쟁을 표방한 현 정부의 원칙에 따라 자율을 주고 경쟁시켜야 한다. 인천송도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설 국제학교, 외국대학 분교 등과 경쟁하려면 이번 조치를 바꿔야 한다. 민족사관고는 내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중학교 내신, 과목별 우수성 등을 총 평가해 선발할 것이다. 학원에 대한 응시생들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프리미엄 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