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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 규제로 건설산업 살릴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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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건설업계는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물량 급감과 유동성 악화 등으로 경영위기가 심각하다. 2월 건설수주는 4조88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21% 감소했고, 건축 부문은 58%나 급감했다.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 등 공공투자를 늘리고, 선금지급 확대를 통해 경기침체에 대응하고 있다.

어느 산업이든 경기 침체 시에는 고통이 따른다. 건설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 원수급자가 어려워 하수급자와 현장에서 직접 공사 참여 중인 장비·자재업체와 건설근로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 원인은 공사물량 부족과 실적공사비제도, 저가낙찰에서 찾을 수 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원수급자가 최악인 상황에서 하수급자나 그와 거래하는 2차 거래업체의 상황이 좋을 리 없다.

최근 건설업계는 위기극복을 위해 마른 수건도 다시 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중요하다. 거래 당사자 간 반목과 질시가 아닌 고통 분담과 위기 극복의 동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러나 건설업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과도한 규제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대금 지급확인제도와 지역전문업체 50% 이상 의무하도급, 납품단가조정협의제가 새로 도입됐고 하도급대금 직불 강화와 하도급대금 지급기일 단축 등의 정책 추진이 그 예다.

지난달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건설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건설산업의 규제완화와 경쟁력 강화가 핵심이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 정책목표가 규제강화인지 완화인지 혼란스럽다. 분명한 건 정부의 경제활성화 노력이 기업활동을 규제해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공정위의 2008년 하도급 실태조사를 보면 하도급대금 현금 지급 비율이 2000년 44.2%에서 지난해 95.3%로 꾸준히 개선돼 왔다. 하도급위반 혐의 업체비율 또한 81.9%에서 43.9%로 급감했다. 특히 한나라당 ‘건설하도급제도개선 TF’의 설문조사 결과 하도급계약 체결 금액이 실제공사 수행에 어려운 수준이라고 응답한 하도급사는 7.8%에 불과했다. 하도급대금 수령 시기는 하도급사의 81%가 법정 기일 내에 받았다고 답했다.

이런 조사결과를 놓고 보면 국회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현실과 거리가 너무 멀다. 하도급법을 위반하는 일부 업체가 문제이지 규제강화로 대다수의 성실한 업체의 경영을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손쉬운 규제강화보다는 거래당사자 간 상생협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좋은 품질의 시공물을 생산하고 제1차, 제2차 협력사의 고통을 덜도록 적정 공사비를 주어야 한다. 특히 하수급자로부터 대금지급 보호방법이 취약한 2차 자재·장비업자와 근로자 등을 위한 실질적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

유승화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