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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키워드]경제주권…'뺏긴다-지킨다' 맥짚기 부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올해 문화계를 이끌 핵심개념들은 무엇일까. 문화의 방향타를 조율하며 판을 달굴 분야별 키워드를 찾아 98한국 문화계를 디자인한다.

'IMF신탁통치' 가 위력을 떨침에 따라 '경제주권' 이 학계의 중요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정부가 과연 경제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가로 논의가 한창이다.

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비판적 사회과학계. 외국 금융자본에 의한 지배를 우려하는 분위기는 너나없이 마찬가지지만 이들이 국가.자본관계에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쏟아와 순발력있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 사회과학포럼 (회장 유팔무).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회장 유초하).학술단체협의회 (회장 박진도).참여연구소 (이사장 김중배)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연말 이들에 의한 정권교체 평가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정권교체가 '지배블럭의 전술적 패배' 이기 때문에 '반쪽의 정권교체' 로서 한계와 가능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결론이었다.

이런 결과로 정대화 교수 (상지대.정치학) 는 새 정부가 권력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지만 그것은 "지배블럭이 구조적으로 허용한 범위내" 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같은 평가에는 오늘의 위기가 박정희 개발독재의 부정적 측면이 5.6공을 거치면서 확대재생산되어온 결과로서 개발독재에 익숙한 기득권 세력의 구조적 무능력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런데 이같은 일반적 평가는 연말을 거치면서 '경제주권' 에 대한 논의로 압축.구체화되고 있다.

새 정부의 성격과 개혁가능성이 결국 'IMF신탁통치' 라는 현안과 맞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호기 교수 (연세대.사회학) 는 "현실적으로 IMF의 요구를 피할 수 없다면 관건은 개혁.개방의 주권적 헤게모니 확보일 수밖에 없다" 고 설명한다.

현재의 외환위기를 극복하되 우리 경제에 대한 주권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경제주권을 '개척.개방정책 결정의 자율성' 으로 규정한 김균혁교수 (고려대.경제학) 는 최근의 IMF요구가 멕시코.동남아시아에 적용했던 동일한 내용이라며 체질이 다른 한국경제가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논의의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의 일련의 조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비관적인 견해는 새 정부의 일차적 결정이 군비축소.실명제 유지등 IMF권고사항중 개혁적인 내용보다 전.노 사면.정리해고 등 기득권세력과의 타협인 점에 주목한다.

"앞으로 계급적 변수가 주요한 갈등 요인으로 등장할 것" 으로 예상한 강내희 교수 (중앙대.영문학) 은 결국 "지배블럭에 전략적으로 패배하는 결과" 를 가져와 '경제주권' 을 상실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조심스런 낙관론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학계의 논의를 신속하게 담아 나온 '경제와 사회' (한울刊) 36호 특집 '한국자본주의, 국가, 노동' 이 대표적. 여기서 조희연 교수 (성공회대.사회학) 는 새 정부의 개혁과 경제주권 확보의 성패는 '개혁의 사회적 파트너쉽' 의 형성 여부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한국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참여와 창의성 없이 더이상 발전하지 못한다고 진단한 김대환 교수 (인하대.경제학) 도 같은 맥락. 그는 정부나 기업만으로 우리의 필요에 따른 경제구조조정을 수행하기에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박순성교수 (동국대.경제학) 는 한국 학계에서도 비판적 대안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았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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