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감원태풍…턱에 찬 과잉고용 자가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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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평생직장' 의 대명사로 여겨져온 금융계가 감원의 태풍 앞에 놓였다.

조만간 부실종금사들이 무더기로 문을 닫고 다음달중 서울.제일은행이 새 주인을 맞는 것을 신호탄으로 금융계 인원정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벌써부터 이들 은행에서는 외국계은행이 인수할 경우 현재 인원의 절반 이상은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또 부실은행의 자구노력 차원에서 진행돼온 감원.감봉 바람은 금융기관 전체로 확산될 조짐이다.

새해초부터 조흥.국민 등 우량은행들이 명예퇴직을 받기 시작하고 한일.상업.외환은행이 인력을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은 올해 은행권의 '감원 파고' 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노동법개정안이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처리돼 정리해고제가 도입되면 금융계의 대규모 감원이 2월말이나 3월초께부터 가시화될 게 분명하다.

이처럼 많은 은행들이 인원정리를 서두르는 것은 전체경비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은행경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요 선진국 은행들의 경우 이 비중이 40%가 채 안되는데 반해 국내은행들은 대개 70~80%선이다.

이에 비해 1인당 생산성은 외국보다 턱없이 낮은 게 현실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상당수 점포의 경우 현재 인원의 절반으로도 충분히 꾸려갈 수 있다" 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계 일부에서는 일선 지점장들이 재량으로 정리해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은행들은 직원급여를 남이 올리면 따라 올리는 식으로 눈치를 보며 올려왔다.

수익성은 고려대상도 아니었다.

또 실적.능력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단일호봉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였다.

김승유 (金勝猶) 하나은행장은 "외환딜러와 일선 점포의 창구직원에게 같은 호봉을 적용하고 있는 게 현실" 이라며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봉제를 도입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상당수 은행들이 나름대로 인건비 감축계획을 세웠지만 노조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어 시행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그러나 금융계에선 "이대론 안된다" 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어 감원.감봉 바람은 대세로 굳어가는 분위기다.

한편 은행들은 올해부터 철저히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펼친다는 전략아래 독립채산제를 도입하는 등 은행 경영상의 변화도 모색하고 있다.

보람.광주은행 등이 이 제도를 도입한데 이어 하나은행은 올해부터 본부경비까지 독립채산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한편 재계에도 감원 러시가 확산될 전망이다.

주요 그룹은 지난 연말 사장단.임원 인사를 단행한데 이어 올해초 부장급 이하 후속인사를 하면서 일반 직원에 대해서도 인력 재배치 또는 감축 등을 고려중이다.

특히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6백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용과잉상태' 라고 느끼고 있어 근로자들의 위기감은 확산되고 있다.

박의준·이원호·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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