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추경예산, 의원들 선심 쓰라는 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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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추가경정예산도 국민 세금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공돈인 양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긴급할 때 짜는 추경에 자기 지역구의 민원사업을 밀어넣는 ‘선심성 예산 끼워넣기’ 행태가 매번 반복될 리 없다. 이번 추경에서도 이 같은 구태가 재연돼 큰일이다.

국회 상임위가 추경을 심의하면서 예산을 당초 정부안보다 무려 5조5000억원가량 늘렸다. 경제 살리기에 꼭 필요한 돈이라면 물론 늘릴 수도 있다고 본다.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먼저 꺼야 하는 상황이라면 재정건전성도 잠시 뒤로 미룰 수 있다. 그러나 의원들이 증액한 사업 내용을 보면 어이가 없다. 이용자가 없어 개항도 못한 울진공항을 비행훈련센터로 활용하자며 49억원 늘렸는데 이게 추경을 편성할 만큼 중요하고 긴박한 사업인가. 울릉도 일주도로 건설(10억원), 지역구 종합비즈니스센터 건립(500억원) 등은 경제 살리기와 무슨 관련이 그렇게 깊은가.

이번 추경은 ‘수퍼 추경’이라 불릴 정도로 사상 최대 규모다. 정부가 국회에 내놓은 예산액이 28조9000억원이나 된다. 그만큼 국민은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임금 삭감과 실업 불안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세금을 더 내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외국에서는 지금 조세저항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은 추경 편성에 반대하지 않았다. 재정건전성이 타격을 받는데도 그리 개의치 않았다. 국가채무가 지난해 308조원에서 올해 367조원으로 늘고,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30.1%에서 35.6%로 급증해도 위기부터 끄고 보자는 입장이었다. 이런 국민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더라면 의원들이 그런 구태는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가 들고 온 예산안에 조금이라도 낭비가 없는지, 비효율적인 부분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여당도 한심하지만 더 한심한 건 야당 의원들이다. 지역구 챙기기는 한통속이겠지만, 그래도 야당은 감시자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한다. 정부의 추경 규모가 너무 많다며 13조8000억원의 자체 추경안을 발표했던 그들 아닌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제외한 불요불급한 예산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던 주장은 그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묻고 싶다.

국회는 앞으로 심의 과정에서 상임위의 증액안을 최대한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물론 정부의 추경안도 면밀히 심의해야 한다. 아르바이트가 아닌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추경, 빈곤층과 서민들의 생계지원에 좀 더 역점을 두는 추경이 되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