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는 병실’ 시범 운영 한양대병원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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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6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양대병원 본관 16층 7호 병실. 복통 환자 이선옥(77·충북 제천) 할머니 등 6명이 입원해 있다. 이 할머니는 방금 검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속이 계속 안 좋았는데 검사를 하고 나니 좀 낫다. 물 한 잔 달라”고 하자 옆에 있던 간병인 김순자(58·여)씨가 “고생하셨다”고 말한다. 이 할머니의 가족 관계 등에 대해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진다.

16일 서울 한양대병원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간병인 김용자(45·右)씨가 파킨슨병으로 입원한 백향기(75) 할머니의 다리를 마사지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김씨가 할머니의 보행을 돕는 모습. [김태성 기자]


이 병실에는 보호자용 간이 침대가 없다. 간병인 김씨가 앉는 철제 의자가 있다. 이 할머니는 김씨를 보며 “이 사람이 숟가락 하나도 밥 먹을 때마다 닦아 준다”며 “딸 같고 식구 같다”고 말했다.

이곳은 한양대병원이 운영하는 보호자 없는 병실이다. 이 병원에는 이런 병실이 세 개 있다. 병상은 18개다. 여기에서는 보호자가 밤새 간이 침대에서 쪼그리고 자면서 환자를 보살피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간병인이 그 역할을 한다. 보호자가 오래 머물 수도 없다. 낮 12시~오후 2시, 오후 5시30분~8시 두 차례만 면회할 수 있다. 그 외 시간에는 휴게실에서 만날 수 있다.

김씨를 비롯한 12명의 공동 간병인이 병실 세 개를 맡고 있다. 이 할머니는 간병비로 하루에 1만5000원을 부담한다. 일반 병실(2만5000~3만원), 단독 간병인(최저 6만원)에 비해 훨씬 싸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날 입원한 당뇨병 환자 임마례(65) 할머니는 보호자 없는 병실에 입원하려 사흘간 기다렸다. 일반 병실은 대기자가 없었다. 보호자 홍모(30·여)씨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 간병할 수도 없고 나도 몸이 무거워(임신 중) 매일같이 옆을 지켜 드리는 게 쉽지 않았다”며 “보호자 없는 병실이 이런 걱정을 해결해 줬다”고 말했다.

이 병원 박혜순 수간호사는 “경제적 부담 없이 24시간 환자를 돌볼 수 있어 환자와 보호자 모두 만족하고 있다”며 “보호자 없는 병실로 옮기기 위해 환자 4명이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한양대병원은 2007년 6월부터 보호자 없는 병실을 운영하고 있다.

보호자 없는 병실 간병비가 저렴한 이유는 노동부가 간병인의 인건비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간병인 월급 113만원 중 87만원을 노동부가 지원한다. 서울지역자활센터협회가 사회 서비스 일자리의 일환으로 간병 서비스를 맡고 있다.

보호자 없는 병원은 보건복지가족부가 2007년 6월 한양대·건국대·천안 단국대병원 등 4개 병원 119개 병상에서 시범 사업을 했다. 선진국처럼 보호자가 없는 병원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선진국은 간호사가 간병을 하지만 우리는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가 너무 많아 공동 간병인이 담당하고 있다.

복지부가 ‘보호자 없는 병원’을 이용한 환자 27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8%는 ‘다시 이용하고 싶다’고 응답해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하지만 간병인 인건비 보조금 때문에 확대하기가 쉽지 않다. 복지부는 내년에 전국 40여 개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간병인 이용료를 건강보험이 담당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하루 1만~2만7000원 정도만 내면 보호자 없이 병원에 환자를 맡길 수 있지만 보험료가 오를 수 있어 반발도 예상된다.

강기헌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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