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 시상식 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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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는 다르다’ 선언 무대 된 시상식

뮤지컬의 밤은 뜨거웠다. 딱딱한 시상식의 틀을 깬 과감한 진행에 관객은 하나가 됐다. 신·구세대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엔 기품과 격이 흘렀다.

20일 오후 8시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 오프닝 공연에서 사회를 맡은 뮤지컬 배우 오만석(가운데 마이크 든 이)을 중심으로 ‘드림 걸즈’(左)와 ‘미녀는 괴로워’ 팀이 열정의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20일 저녁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주최 중앙일보·한국뮤지컬협회·국립극장)의 히어로는 ‘미녀는 괴로워’였다. 지난해 말 초연된 이 작품은 최고 영예인 최우수 창작뮤지컬상을 비롯, 여우주연상·연출상·무대미술상 등 4개 부문을 거머쥐며 최다 수상의 영광도 함께했다. 작품 속 ‘뚱녀’에서 ‘미녀’로 변신했던 최성희씨는 이번 여우주연상 수상을 통해 가수 ‘바다’에서 뮤지컬 배우 ‘최성희’로 화려하게 도약했다.

환갑을 눈앞에 둔 김진태(58)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테비에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 후배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최근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드림 걸즈’ 역시 최우수 외국뮤지컬상과 남녀조연상 등 3부문을 수상했다.

‘미녀는 괴로워’의 수상은 의미심장하다. 이른바 뮤지컬의 독립선언이다. 사실 지금껏 한국 공연계는 뮤지컬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 왔다.

"대중적 인기는 있을지 모르지만 예술적 완성도에선 한 수 아래”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돈 벌기에 급급한 쇼비즈니스”라는 꼬리표도 항상 따라다녔다. 평자들 역시 뮤지컬의 장르적 특성을 이해하기보단 드라마적 완결성, 극적 긴장감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뮤지컬은 언제나 연극의 하위 장르에 불과했다.

이는 히트한 영화를 원작으로 한 ‘미녀는 괴로워’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모가 한참 떨어지는 무명 가수가 성형수술을 통해 미모의 가수로 탈바꿈한다는, 황당한 이야기 구조는 혹평의 단골 메뉴였다. 개막 초반 다소 어설픈 무대 전환 역시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작품은 콘서트를 방불케하는 생생한 라이브로 승부를 걸었다. 비현실적인 스토리는 오히려 판타지의 매혹 속으로 대중을 끌어당겼고, 그건 뮤지컬만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뮤지컬이 어떻게 연극과 다른지, ‘뮤지컬다움’이 과연 무엇인지, ‘미녀는 괴로워’의 수상은 뮤지컬 정체성의 승리였다.

70여 명‘드림 팀’오프닝 무대 달궈
오만석, 노래·연기·사회 … 군 복무 조승우 영상 인사

축배와 갈채와 눈물이 어우러진 축제의 밤이었다. 20일 오후 8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 시상식은 오프닝 공연으로 펼쳐진 뮤지컬 ‘드림 걸즈’의 ‘원 나잇 온리(One Night Only)’ 가사처럼 ‘오직 이날 밤’에만 맛볼 수 있는 하나 됨을 선사했다.

◆오프닝으로 ‘끝내줬다’=유례없는 만남이었다. 단독 사회자 오만석의 솔로로 시작된 ‘원 나잇 온리’에 ‘드림 걸즈’의 에피·디나·로렐, ‘자나 돈트’의 고교생 게이들, ‘미녀는 괴로워’의 아미·한별이 가세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대가족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등장하나 했더니, ‘형제는 용감했다’의 유림 종손들과 ‘내 마음의 풍금’의 송정리 꼬마들이 뭉쳤다. 70여 명의 출연진이 다 함께 ‘오직 이날 밤’을 노래한 오프닝은 뮤지컬계의 화합 한마당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더 뮤지컬 어워즈’가 자랑하는 ‘작품별 하이라이트’ 축하 공연은 올해도 관객을 롤러코스터에 태웠다. ‘내 마음의 풍금’ 선율과 함께 추억의 소풍을 떠났던 관객은 ‘미녀는 괴로워’의 한별이 ‘마리아’를 열창할 때 팬클럽이라도 된 양 열광했다. ‘형제는 용감했다’의 유림 종손들이 흥겨운 ‘축시춘배’를 부를 때 어깨를 들썩이다, 바이올린 선율을 탄 유대인 마을의 ‘보틀 댄스(Bottle Dance)’에 노을빛 감상에 젖었다.

◆파격 시상식 또 업그레이드= 한편의 뮤지컬 공연처럼 깜짝 쇼가 이어지는 ‘더 뮤지컬 어워즈’의 파격은 올해도 여전했다. 2층 객석에서 ‘대장금’ 공연을 소개한 임창정은 곧바로 본 무대에서 축하 노래를 불렀다.

특히 ‘시상식의 꽃’ 남우 및 여우 주연상 시상은 선배·동료이자 경쟁자인 배우들이 직접 수상 후보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윤석화 등 4명의 여배우가 객석에 앉은 4명의 여우 주연 후보를, 송용태 등 5명의 남배우가 5명의 남우 주연 후보를 소개한 것이다.

남우주연상 시상에는 ‘깜짝 선물’이 하나 더 숨어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의 홍보공연단으로 군 복무중인 조승우가 영상을 통해 등장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자신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 ‘맨 오브 라만차’의 류정한을 “돈키호테와 한 몸이 된 돈키호테”라고 소개하며 열띤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철저한 보안에 올해도 깜짝=시상 순간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는 ‘더 뮤지컬 어워즈’가 올해도 ‘깜짝 소감’을 속출시켰다. 출산 후 21일 만에 처음으로 외출한 장유정 연출은 ‘형제가 용감했다’로 극본상을 탄 데 이어 장소영 작곡가와 함께 작사작곡상을 수상하자 “더 준비한 수상 소감이 없다”며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두 시간 내리 축하 공연을 지휘하던 김문정 음악 감독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음악감독상을 수상하자 “지난해엔 10초 전에 알려주더니…”라며 웃음을 지었다.

아쉬움도 있었다. 옥주현과 함께 인기상을 수상한 ‘빅뱅’의 승리(‘소나기’)와 ‘드림걸즈’로 여우조연상의 영광을 안은 정선아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관계자가 대리 수상했다.

기획·연출·연기 완벽“예견된 축배”
‘미녀는 괴로워’ 4개 부문‘최다 수상’

기획ㆍ연출ㆍ연기의 완벽한 삼각 하모니. 최우수 창작뮤지컬상을 포함, 올해 ‘더 뮤지컬 어워즈’의 최다 부문 수상작이 된 ‘미녀는 괴로워’의 승리는 예견된 것이었다. 히트한 원작 영화의 장점만 가져오되 무대 언어로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뮤지컬만의 매력을 뽐냈고, 이름값 하는 스타의 활약에 힘입어 흥행 돌풍까지 일으키며 ‘성공한 무비컬’의 첫 주자가 됐다.

◆콘서트 뮤지컬 에너지 ‘빅뱅’=무대가 영화와 다른 것은 무엇보다 현장감. ‘미녀는 괴로워’의 성공은 일차적으로 "대극장 창작극으로는 드물게 객석에까지 에너지를 폭발”(조용신 뮤지컬평론가)시킨 데 있다. 오디션부터 콘서트까지 압축적으로 이어지는 ‘마리아’ 대목이 대표 장면. 익히 알려진 히트곡이 객석의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한별의 팬클럽 입장에 처한 관객은 열렬한 호응으로 답했다. 뮤지컬 ‘헤드윅’을 기획한 제작사의 콘서트 노하우가 빛을 발한 대목이다. 2006년 영화 흥행과 동시에 영화사가 먼저 뮤지컬 제작을 발 벗고 나섰기에 가능했다. ‘별’ ‘뷰티풀걸’ 등 주요 OST 판권이 일찌감치 해결된 것이다. 대중 가수(최성희)와 뮤지컬 배우(윤공주)의 더블 캐스팅은 선의의 경쟁을 유도함과 동시에 관객의 비교 욕구를 자극해 완성도와 흥행을 동시에 이끌었다.

◆20ㆍ30 욕망 무대에 응축=‘가수 지망생의 성공담’이라는 얼개는 ‘드림 걸즈’를 비롯해 브로드웨이의 단골 레퍼토리다. 주인공의 드라마가 뮤지컬 넘버와 자연스레 용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쇼비즈니스의 화려한 무대가 시각적인 매력을 선사할 수 있어서다. 안전하긴 해도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탁월한 가창력을 가진 뚱녀’는 이 점에서 차별화를 발휘했다. 사회적 성공을 갈망하면서도 냉정한 프로 세계에서 상처 받기 쉬운 20, 30대 관객은 한별에게 빨려들었다. "뮤지컬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보다 캐릭터”(임양혁 ‘쇼노트’ 이사)라는 판단이 통한 것이다. 스타를 꿈꾸는 주인공의 심정을 밤하늘의 별로 상징하는 등 심혈을 기울인 무대 언어가 이를 뒷받침했다.

◆눈 앞에서 즐기는 ‘변신의 마력’=무엇보다 화제가 된 것은 수술을 통한 변신 장면. 그림자를 활용해 상징적으로 처리하든가 1인2역을 쓰는 등 대안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제작진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최대한 압축하기 위해 수백 차례 실험을 했고, 마침내 얻어낸 6분에 맞춰 곡(‘한별은 어디에’)을 만들고 손발을 맞췄다. 무대에서 빚어진 마술 같은 퍼포먼스는 ‘편집’ 없는 현장의 생생함을 만끽하게 했다.

분장으로 무대미술상을 수상한 채송화 분장가는 국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실력자. ‘헤드윅’의 펑크 여장, ‘이블 데드’의 좀비 분장을 거쳐 한국판 ‘캣츠’의 고양이 변신을 도맡아 해낸 바 있다. ‘미녀는 괴로워’에선 최성희와 윤공주의 얼굴 모양에 맞춘 원판 마스크를 100여 개 제작해 매회 1회용으로 썼다. ‘배우 피부에 무리를 주면 안 된다, 노래 부르기 편한 상태여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1년 이상 준비한 끝에 충족시켰다.

◆특별취재팀

문화스포츠부문=최민우·강혜란·이영희·정강현·김호정 기자
영상부문=이영목·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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