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분만 오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쇼핑몰 창업은 레드오션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사이버쇼핑몰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류ㆍ잡화 쇼핑몰의 창업률과 폐업률은 매년 10~20%씩 증가한다. 짧은 시간 안에 저비용으로 문을 쉽게 열 수 있지만 경쟁이 심해 쉽게 닫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했다. 경기 불황에도 차별화된 타깃을 정해 상대적으로 선방하는 쇼핑몰 CEO들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는 자신의 10대 친구들을 겨냥한 10대 CEO, 2회는 키가 작아 옷을 사기 어려운 남성, 건달 패션을 좋아하는 중년 남성을 틈새시장으로 잡은 CEO, 3회는 60~70대 CEO로 젊었을 때 취미로 모았던 로봇을 판매하는 분과, 일본에 체류했던 경험을 살려 스타킹을 판매하는 분을 소개한다. (도움:카페24) 편집자주

“키 작은 분은 이랜드주니어 간다길래”

“키 작은 남성 분들은 두 가지 고민을 하더라고요. 몸에 딱 맞는 옷을 구하기 힘든 것이 첫 번째, 멋진 옷을 입지 못해 여자친구를 사귀기 힘든 것이 두 번째래요. 그래서 우리가 파는 옷을 입고 애인과 즐겁게 지내시라는 마음으로 쇼핑몰을 열게 됐어요.” 의류쇼핑몰 ‘스몰맨’의 28살 동갑내기 부부 대표 호연석, 정수진씨의 말이다.

다루는 상품과는 달리 지난 17일 서울 우이동 자택에서 만난 호씨 부부는 키가 큰 분들이었다. 호씨와 정씨의 키는 각각 186, 174cm였다. 대한민국 남녀 평균 키를 10cm나 훌쩍 넘는다. 그들을 처음본 순간 ‘장신들이 단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차라리 빅사이즈 옷을 파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그들의 ‘역발상’ 시도가 더욱 궁금했다.

-언제부터 쇼핑몰을 운영했나요.
“‘스몰맨’이 처음 오픈한 날은 2007년 4월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함께 유학을 가려고 했죠. 그러다 ‘가기 전에 쇼핑몰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아내가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쇼핑몰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도전을 한거죠. 큰 기대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사업이 잘 되는 바람에 결국 유학의 꿈을 접고 본격적인 사업의 길로 들어서버렸습니다.”

-왜 굳이 ‘단신을 위한’ 쇼핑몰 열었나요.
“나와 아내는 키가 상당히 큽니다. 평소 옷을 살때 맞는 사이즈가 없어 불편했던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어요. 처음엔 ‘키 큰 사람’이 옷을 살 수 있는 쇼핑몰을 차리기로 하고 카페나 동호회를 뒤지며 ‘키 큰 사람의 아픈 사연’을 찾아 다녔죠. 그러다 우연히 ‘키가 작아 서러운’사람들의 모임을 알게 됐습니다. 게시판의 댓글을 살펴보니 대부분 키가 작아 맞는 옷이 거의 없고 이 때문에 멋지게 차려입지 못해 여자친구를 만나가기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어떤 분은 맞는 치수를 찾기 위해 이랜드주니어나 나이키주니어를 찾기도 한대요.”

-처음 시작할 때 어려웠던 점은요.
“동대문 도매 시장에서도 작은 사이즈의 남성 옷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줄자를 가지고 다니며 ‘이것보다 작은 사이즈는 없느냐’고 물어 퇴짜를 맞기도 했죠. 마진이 남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스몰 사이즈를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여러 단골 매장을 찾아다니며 스타일이 괜찮은 옷이 있으면 단신 사이즈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델을 찾기도 힘들겠어요.
“처음 모델을 뽑을 때 50여명 정도 면접을 봤어요. 165~170cm 사이의 남성은 많았지만 호감가는 얼굴과 소위 '간지나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 애를 먹었죠. 겨우 뽑은 두 친구가 현재 모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 친구는 아르바이트로, 한 친구는 직원으로 일하죠. 제 전공이 관광경영이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은 제주도나 일본 등으로 날아가 모델 사진을 찍고 옵니다. 좋은 장소를 미리 섭외해서요.”

-사진 촬영은 보통 인근 카페나 공원에서 찍지 않나요.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이왕이면 경치가 좋은 곳에서 찍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쇼핑몰엔 고정 고객이 많은데 매번 방문할 때마다 비슷한 콘셉트의 사진을 보시면 식상하실거예요. 그래서 변화를 주기 위해 여러 장소를 물색해 사진을 찍죠. 이런 것도 고객에 대한 서비스이고 판매 전략의 일환입니다.

-쇼핑몰의 콘셉트와 앞으로의 계획은요.
“ ‘우리 가게에서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의 옷을 사가세요’라는 것이 기본 콘셉트 입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을 열 예정입니다. 키가 작은 분은 직접 입어보고 사는게 좋은데 아무래도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만으론 한계가 있잖아요. 물론 이 매장엔 당연히 키 작은 직원이 있겠죠. 키가 커 보일 수 있는 스타일에 대해 함께 상의하고 옷을 구매할 수 있도록요. 또 해외 배송의 활로도 넓힐 예정이예요. 키가 작은 한인 분들은 외국인 체형에 맞게 나온 옷들을 거의 소화하지 못한다고 해요. 단신인 분들이 옷 때문에 고민하지 않는 날을 위하여.”

‘스몰맨’ 연매출에 대해 호씨 부부는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를 꺼렸다. '잘 나간다'는 소문이 나면 경쟁업체들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글ㆍ사진=이지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