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위기 자초한 정부의 실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 고비 넘기는가 했던 외환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국가운명이 풍전등화 (風前燈火) 와 같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곰곰이 따져 봐야 할 시점이다.

정부당국은 번번이 최선을 강조하건만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판단착오와 실수의 연속이다.

그것을 따져 보자. 첫째, 정확한 외채규모부터 몰랐다.

그러니 IMF에 신청한 구제금융 액수부터 틀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둘째, 국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디어들을 너무도 서투르게 대했다.

월스트리트를 좌지우지하는 경제통신 블룸버그의 이름조차 재정경제원 당국자들은 제대로 몰랐다.

한국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가장 먼저 타전한 것도, 'IMF 재협상론' 이 미국 월스트리트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도 이 통신사였다.

셋째, 그간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을 너무 홀대했다.

IMF국장급이 방한해도 장.차관이 나서 영접하지만 이들 평가기관 관계자들이 오면 담당과장이나 사무관이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외국투자가들이 한국시장을 바라보는 잣대를 제공하는 힘 있는 기관인데도 말이다.

미국의 양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불과 한달 새 5~6등급이나 떨어뜨렸다.

넷째, 정부의 대응책도 실수를 거듭했다.

찔끔찔끔 했던 종금사 업무정지조치만 해도 한꺼번에 해치웠어야 했다.

다섯째, IMF 재협상론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한 책임이다.

대선기간중 재협상론이 불거져 나와 대외신인도가 곤두박질쳤음에도 "나라를 살려야 합니다.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하고 적극 만류하는 당국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여섯째, 부실금융기관 처리방식도 어설펐다.

정부는 부실종금사에 대한 업무정지조치를 두 차례에 나눠 하는 바람에 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한 것은 물론 정부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을' 정도의 불신을 자초했다.

일곱째, 지난 7~8개월 동안 환율방어를 위해 달러를 너무 많이 써 버렸다.

이밖에 외환통계 등 각종 통계가 부실해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렸고, 기아처리와 관련해 정치권이 해석을 제 멋대로 하는 바람에 불신만 증폭시켰다.

이제 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같은 실수가 되풀이될 경우 국가가 거덜날 위기에 놓였기에 하는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의 실수를 막고 제대로 대응했으면 좋겠다.

박의준 경제1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