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젊은 감각 익히려 물집 잡히도록 매장 누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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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그룹 석창현(45·사진) 이사는 목발을 짚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2급 장애인이다. 생후 9개월에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를 전다. 그런 그가 올 1월 정기인사에서 ‘회사원의 꽃’인 임원으로 승진했다. 그것도 의류매장을 직접 발로 누벼야 하는 캐주얼 패션사업 총괄 자리다. 요즘 그는 매주 목·금요일을 매장을 방문하는 날로 정해 명동 등 20곳가량을 돈다. 장애인용 차량을 직접 운전해 이동한다.

학창 시절 그는 넓은 세상을 무대로 사는 비즈니스맨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해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 수 없던 소년의 눈에는 벅차 보였다. 판검사가 되면 장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공부에 매달렸다.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하자 축하가 쏟아졌다. 그러나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대학 4학년 시절 소아마비가 악화돼 큰 수술을 받았다. 1988년 2월 대학을 졸업했지만 꼬박 4년을 재활치료에 매달려야 했다.

병상에서 일어섰지만 대학 졸업 후 수년이 지난 장애인을 받아주겠다는 회사를 찾기 어려웠다. 기업 수십 곳에 원서를 냈지만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석 이사는 “낙오자라는 생각에 희망도 보이지 않아 벼랑 끝에 서있는 심정이었다”며 “살면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취업 실패로 좌절하던 그의 눈에 띈 것은 신문에 난 이랜드그룹 신입사원 모집공고. ‘장애인도 지원 가능하다’는 문구가 담겨 있었다. 93년 1월, 그는 이 회사에 입사했다.

5명씩 조를 짜 산을 오르는 신입사원 연수 때 석 이사는 조원들에게 불편을 주기 싫어 “캠프에 남아 다른 일을 돕겠다”고 말했다. 회사는 “이미 입사한 장애인 선배들도 모두 산을 올랐다”며 그를 이끌었다. 그를 돕느라 3~4시간 걸리는 산행이 9시간 넘게 이어졌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97년에는 새로 문을 연 2001아울렛 중계점으로 발령받았다. 입사 후 처음으로 사무실을 벗어나 발로 뛰어야 하는 일이었다. 목발을 쥔 손에 물집이 생기도록 현장을 누볐지만 힘에 부쳤다. ‘장애인인 나를 왜 현장으로 보냈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중계점 배치 일주일이 지나서 이랜드그룹 박성수 회장이 매장에 들렀는데, 당시 대리였던 석 이사가 수행하게 됐다. 그는 “저 같은 장애인이 고객을 직접 상대해도 되겠습니까”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박 회장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 자신감을 갖고 일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석 이사와 일해 본 직원들 사이에선 야간에 처리할 문제가 생겨 ‘이 시간에 누가 있을까’하고 회사에 전화를 걸면 어김없이 석 이사가 받더라는 얘기가 회자된다. 회사 동료로 만나 결혼한 아내도 그가 헌신적으로 일하는 점을 좋아해 줬다. 그는 장애를 갖고 입사한 후배들과 만나면 “특별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일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부장 시절 PB(Private Brand) 사업부를 맡아 매출과 순이익을 두 배가량 늘리는 실적을 냈다. 임원 승진에는 이 같은 공적이 뒷받침됐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그는 “장애인은 몸이 불편하지 생각이 불편한 게 아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뭔가를 해줄 게 아니라, 꿈을 이룰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 포기했던 꿈을 키우고 있다. 회사 최초의 장애인 최고경영자(CEO)가 돼 세계를 누비겠다는 꿈이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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