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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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10년 전, 서원교 회계사(49)는 그야말로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당시 어느 회계학회 세미나에서 한 대학교수는 서원교 회계사가 개발한 'AIA(Acitivity Information Accounting)'라는 회계원리를 '회계학계의 노벨상감'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는 신지식인에 선정됐고, 장관상을 받았고, 언론에 소개됐다. 2001년에는 청와대에서 그를 불렀다. 서 회계사가 개발한 회계원리를 정부 회계시스템에 적용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그는 이제 오십을 바라본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는 서울시 사당동에 있다. 3평 남짓한 공간이다. 직원은 없다. 그동안 그는 꼬박 9년을 송사에 매달렸다.

지루한 법정 싸움의 시작은 2001년이었다. 서 회계사의 주가가 한창이던 2000년 초 한 지방 국립대 행정학과 교수가 찾아왔다. 같이 사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서 회계사는 2001년 그에게 경영을 위임했다. 정부회계시스템 개발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곧 서 회계사는 정부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된다. 대신 다른 업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동업자 K 교수와 부하직원 P씨가 개입된 회사였다. 그만 몰랐다.

서 회계사는 K교수와 경쟁사로 자리를 옮긴 P씨를 영업비밀 침해, 특허침해, 사무서위조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수년을 끈 재판에서 그는 졌다. 법원은 K교수의 사무서 위조 혐의에 유죄를 내렸지만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특허심판도 패했다.

그는 "인정하기 힘든 판결이었다"고 했다. 억울했던 그는 '정부회계원리'라는 책을 통해 AIA 개발, 동업, 재판 과정을 모두 밝혔고, 당사자들을 실명으로 거론했다. 이 책에 대해 판매 가처분 금지 같은 소송은 제기되지 않았다.

사법적 판단은 끝이 났다. 서 회계사도 더 이상은 싸울 힘도 여력도 없다. 대신 새로운 시작에 나섰다. 그는 최근 한국, 미국, 호주, 대만, 중국에서 특허를 받았던 AIA원리를 이용해 350만 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회계장부시스템 '이지키핑(www.easykeeping.com)' 개발을 마쳤다. 그에겐 무려 10년만의 론칭이었다.

이지키핑은 회계지식이 전혀 없는 초보자도 온라인상에서 쉽게 재무제표를 만들 수 있는 솔루션이다. 자산을 표기하는 차변, 부채와 자본을 표시하는 대변을 구분할 필요없이 업종별 거래 내용만 입력하면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와 원가보고서까지 자동적으로 산출되는 복식부기 시스템이다. 지금까지 이런 회계시스템은 국내외에 소개된 적이 없다.

서 회계사는 "대부분 소기업, 소상공인들이 자체적으로 장부 능력이 없어서 세무사무소에 장부를 위탁하거나 아예 장부를 포기한 채 추계신고 방식을 통해 세무신고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지키핑은 이메일을 보낼 정도의 사람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회계장부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전혀 새로운 회계시스템을 들고, 그는 새로운 시작점에 섰다. 큰 욕심은 없어 보였다. 그는 "내가 개발한 회계 원리를 인정받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오랜 시간 마음 고생을 하면서 회계의 주인은 회계사가 아니라 사업자여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며 "이지키핑은 공공의 재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지키핑 보급을 위해 어떤 누구와도 제휴를 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사진 이찬원 기자

*상세한 내용은 20일 발매되는 이코노미스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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