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문화 '새뚝이']KBS드라마'용의 눈물' PD 김재형·작가 이환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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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난해 가을 어느날 KBS 대회의실. "더도말고 시청률 15%만 내 주세요. " (KBS 홍두표사장) "에이, 욕심도 과하십니다.

어떻게 사극 시청률이 10%가 넘나요. '깜국장' 이 하신다니 12%까지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 (간부들) 11월부터 새로 시작될 '용의 눈물' 을 앞둔 이날 자리에서 피부색이 검다고 해서 '깜국장' 이란 애칭을 가진 김재형PD (61) 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61년 공사 텔레비전 개국요원으로 발을 디딘지 어언 35년. 그동안 국내 첫 연속사극 '국토만리' 부터 시작해 '한명회' 와 '서궁' 에 이르기까지 주로 역사물 연출에 심혈을 기울여왔던 그다.

'용의 눈물' 은 7월 정년퇴임을 한뒤 '프리랜서' 로서 맡은 첫 작품. 김PD는 “이젠 월급받는 직원이 아니구나. 이 작품을 제대로 못만들면 정말 끝이겠구나” 라는 절박한 심정이 엄습했다고 술회한다.

하지만 그는 내심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작가와 좋은 연기자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 그와 호흡을 맞추게된 작가 이환경 (47) 씨는 '무풍지대' '적색지대' 등 주로 남성 얘기를 써온 작가.

다음 작품들을 미리 구상하고 철저하게 자료를 수집하는 성실함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전설의 고향' 을 할때 알게됐는데, 대사에 힘도 있고 스케일도 있었지. 사실 '용의 눈물' 도 이 친구가 방원에 대한 자료조사를 마쳤다는 얘기를 듣고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한거거든. 그런데 (이 친구가) 아직 히트작이 없는거야. 대하사극에 무명작가를 쓴다고 하면 위에서 허락을 안할테고. 그래서 일단 속였지. 월탄 박종화선생의 작품을 각색한다고. 실제로 월탄 작품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용의 눈물' 은 순전히 이환경씨 창작물이에요. " 또다른 힘은 연기를 아는 연기자들에 대한 믿음. '용의 눈물' 출연진의 70%이상은 연극무대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다.

인기의 거품을 잘 아는 김PD는 스타급 연기자 대신 그동안 점찍어둔 연기자들을 일일이 만나 끌어들였다.

특히 드라마 '애인' 에서의 인기를 몰아 현대물에 주력하겠다던 유동근을 촬영현장으로 찾아가 "동근아, 저 석양이 바로 나다.

내가 마지막 불꽃을 피워보련다.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는 말로 유동근을 감동시켰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항상 촬영현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빨간셔츠' 김PD, 학계에서 아무 이의가 없을 정도로 철처한 조사와 시의적절한 대사로 감칠맛을 준 작가, 그리고 이들의 의지를 고스란히 화면으로 옮겨준 연기자들의 '척' 하면 '척' 하는 호흡맞추기는, 사극이라면 궁중여인사만 떠올리던 중년의 남성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앉히는 신묘한 힘을 발휘했다.

38%라는, 사극으로서는 엄청난 시청률은 이를 증명하는 한 증거일 뿐이다.

이환경씨는 요즘 한주일에 4회분량에 해당하는 6백여장의 원고를 써대느라 그야말로 '코피가 터질 정도' 다.

최명길씨의 산달이 내년 3월인 관계로 그전에 최명길씨 출연분의 녹화를 마쳐야하기 때문. 이제 이 콤비는 99년을 전후해 다시 한번 사극 붐을 일으킬 채비를 하고있다.

바로 고려태조 왕건의 일대기를 다뤄보겠다는 장대한 계획. 통일신라말기 부패상을 타파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화합' 으로 끌어안으며 찬란한 고려 문화의 기틀을 다진 왕건이야말로 이들의 구미를 당기는 테마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행보는 이미 시작됐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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