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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계 공영 방송은 '개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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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디지털 혁명과 미디어 시장의 개방은 세계 방송질서를 경쟁 구도로 바꿔 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공영방송들은 뉴미디어.상업방송과의 경쟁 속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이 위기를 세계 공영방송들은 '개혁'이란 키워드로 뚫고 있다. 정부 또한 이런 노력에 동참한다.

공영방송의 교과서라 불리는 BBC(영국).NHK(일본).ARD(독일)…. 이들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며,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정치권력.이익집단으로부터의 독립=스페인의 호세 사파테로 새 총리. 그는 권력을 잡자마자 "'방송장악'이란 기득권을 버리고 공영방송을 개혁하겠다"고 천명했다.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지난 3월 총선을 사흘 앞두고 철도테러가 발생했다. 이때 TVE 등 공영 방송들은 이를 '바스크 분리주의자'의 소행으로 몰아 집권당이 유리하도록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하지만 곧 테러 배후가 드러나면서 공영방송의 편파보도가 문제됐다.

총선 승리 후 사회당 출신의 사파테로 총리는 공영방송 사장을 교체한 뒤 '방송개혁위원회' 설립을 제안했다. 이 위원회는 방송 민영화, 과감한 인력.기구 구조조정 등을 담당한다. 사파테로 총리는 "권력과 공영방송의 은밀한 관계를 끊지 못하면 사회발전은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많은 언론은 "공영방송 개혁은 이라크에서 군을 철수하는 것보다 어려울 지 모른다"는 전망을 하면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독일의 제2 공영방송인 ZDF도 정부는 물론 여러 이해관계 집단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 방송사의 자체 '방송위원회 위원'은 77명. 정당.노동계 등 각계 각층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그 중 34명이 직.간접적으로 국가기관을 대표한다. 최근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공영방송에 각종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헌적 구조"라며 방송위원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라고 주문했고, ZDF는 개혁 프로그램을 한창 짜고 있다.

영국 BBC 역시 지난달 마련한 보도기준에서 "권력자나 권력기관 보도는 상업적 또는 정치적 압력과 무관해야 한다" 는 점을 명시했다.

◇경영 합리화와 투명화는 기본=독일의 양대 공영방송인 ARD와 ZDF는 최근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두 공영방송은 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스스로 '자율 긴축 선언'을 한 뒤 인력 감축방안을 발표했다. 예를 들어 ARD는 2008년까지 총 1279명의 정규직을 해고해 5.8%의 시청료 인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미 합의한 수신료 인상을 구조조정이 끝난 2006년 이후에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뼈를 깎는 개혁을 한 뒤 국민 앞에 카드를 내밀겠다는 것이다.

경영 투명성에 관한 한 영국 BBC도 빼놓을 수 없다. BBC는 '시청자와의 약속'을 매년 초 발표하고 연말에는 결산 내용을 공표해 시청자의 검증을 받고 있다.

최근엔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포기하고 BBC 테크놀로지 등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다이어트'에 나서고 있다. 일본 NHK 역시 재무제표는 물론 경영위원회 회의록, 예산과 결산의 주요 문건을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

◇질 높고 '다원적'인 프로그램 제공=세계 공영방송들은 공영방송의'기본'을 다지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정권.자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다양한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영방송들은 상업방송과의 과잉 경쟁 속에서 이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프랑스의 경우 최근 수신료 폐지까지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갖가지 논의가 진행 중이다. 결국 공영방송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개발.공급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BBC 역시 자체 개혁 방안을 최근 두 차례 발표했다. 지난 2월에 발표한 '2006년 후의 BBC'와 지난달 발표한 '닐 보고서'다. '2006…'는 경영을 보다 철저히 감시하고 과도한 몸집을 경량화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닐 보고서'는 방송 보도와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담고 있다. 유럽의 많은 미디어 학자들은 "공영방송은 꼭 필요한 방송제도"라면서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영의 합리화와 효율성을 보여줄 때만이 정당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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