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슬픔’ 금잔화, ‘매혹적 미인’ 데이지, ‘고독’ 아네모네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0면

 물 위에 청초하게 떠있는 수련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소녀가 떠오른다. 수련에 ‘순결’과 ‘순수’라는 꽃말이 붙어있는 걸 보면 옛 사람들도 이 꽃을 보며 소녀의 수줍음을 떠올렸나 보다. 아름다운 소녀가 사랑을 고백하는 두 남자를 두고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 한 떨기 수련으로 변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꽃말에 녹아 있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펼쳐질 꽃의 축제를 꽃말과 함께 즐겨보면 어떨까. 친숙하지만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꽃들의 꽃말을 모아 봤다.

금잔화에는 태양의 신 아폴론을 동경하고 사랑하던 한 남자가 며칠 동안 쏟아져 내린 눈으로 인해 태양을 볼 수 없게 되자 괴로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폴론이 그를 가엾게 여겨 태양처럼 노란 빛을 발하는 꽃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비탄’ ‘이별의 슬픔’이라는 꽃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데이지는 원래 숲에서 가장 아름다운 ‘님프’(요정)인 베리디스였다고 한다. 과수원의 신 베르탈나스가 그녀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열렬히 사랑하게 됐지만 이미 남편이 있었던 베리디스는 그와 사랑을 나눌 수 없었다. 남편과 베르탈나스 사이에서 갈등하던 데이지는 한 떨기 꽃으로 변해 버렸는데 데이지가 ‘매혹적인 미인’을 뜻하는 이유다.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붉은 모란에는 선덕여왕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신라를 우습게 보던 당 태종이 신라인들의 지혜를 시험해 보기 위해 모란을 그린 그림을 신라에 보냈다. 다들 “아름다운 꽃이다”라며 반했지만 공주만 얼굴을 찌푸리며 “그림에 나비도 벌도 없는 걸 보니 향기가 없는 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는데, 그녀가 바로 선덕여왕이다. 그녀의 지혜에 감탄한 당 태종이 이후로 신라를 우습게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지름이 15㎝ 이상 되는 탐스러운 꽃이라는 뜻에서 ‘부귀’라는 꽃말이 붙었다.

아네모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꽃의 여신 플로라에게서 이야기가 전해진다. 플로라의 시녀인 아네모네는 무척 아름다워 플로라의 남편 ‘바람의 신’ 제프로스와 사랑에 빠진다. 그것을 질투한 플로라가 아네모네를 꽃으로 만들었는데 슬픔에 빠진 제프로스가 봄이 되면 부드러운 바람을 불어 아네모네가 화려히 꽃 피울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아네모네에 ‘바람꽃’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꽃말은 제프로스의 슬픔을 담아 ‘고독’이다.

옥잠화를 두고서는 중국 설화가 전해진다. 피리를 잘 불던 어느 청년의 연주에 반한 선녀가 내려와 옥비녀를 선물했는데, 실수로 떨어뜨리자 꽃 한 송이가 피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옥비녀를 닮았다 하여 ‘옥잠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청년의 수줍음을 따 꽃말은 ‘수줍음’이다.

할미꽃에는 곱게 키운 세 딸을 시집보낸 할머니가 두 딸을 찾아갔다가 박대를 받고, 착했던 막내딸을 찾아가는 길에 쓰러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담겨있다. 백발을 고이 빗어넘긴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이 꽃에는 ‘슬픈 추억’이라는 꽃말이 있다.

임주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