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보증기관 도덕적 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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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은 2003년 6월 금속 제품을 취급하는 중소기업인 A와 B사에 각각 8억원씩, 총 16억원의 대출 보증을 해줬다.

그러나 두 회사는 사장들이 형제지간인데다 품목.구매처, 그리고 전화번호까지 동일한 사실상 한 회사로 밝혀졌다. 현장조사 등 확인 절차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름만 다른 동일 회사에 똑같은 명목으로 두 차례나 보증을 서준 셈이었다. 보증 후 두 회사는 모두 부도가 났고, 신보 측은 16억원을 은행에 대신 갚아줘야만 했다. 부실한 대출 보증이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 것이다.

부패방지위원회는 지난 1월 이후 실시한 신보.기술신용보증기금(이하 기보), 16개 지역보증재단에 대한 운영 실태 조사 결과를 1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들 신용보증기관은 보증심사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보증 후 사후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부 직원이 보증 과정에서 뇌물을 챙기는 등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부방위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보증기관에서 보증 사고로 은행에 대신 갚아준 돈은 무려 3조5000억원으로 2002년의 1조3953억원, 2003년의 2조8213억원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 도덕적 해이 심각한 보증업무=신보는 2003년 제조업체 C사에 대해 18억원의 대출보증을 서줬다. 그러나 당시 이 회사는 매출액 대비 차입금 비율이 80%에 육박하는 등 신보의 보증 기준(70% 미만)에 크게 미달하는 위험 기업이었다.

보증 후 사후관리도 엉성했다.

기보는 2003년 10월 무역업체인 S사에 10억원의 대출보증을 해준 뒤 지난해 10월 보증기한을 한 차례 연장해줬다. 그러나 이 회사 대표인 이모씨는 이미 2003년 말 회사를 처분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뒤였다. 기보 측이 이씨의 주민등록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신보의 보증 담당 직원 A씨는 2003년 여러 개 중소기업에서 10차례에 걸쳐 780만원의 대가성 금품을 받고 보증심사 과정에서 특혜를 준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와중에도 2002년 신보와 기보는 2억4000만원이었던 이사장 보수를 각각 4억5000만원과 4억원으로 올렸다.

◆ "상반기 중 대책 마련"=부방위는 신용보증 업무의 주무 부처인 재경부와 관계 전문가들로 특별팀을 구성, 상반기 중 신용보증제도 개선종합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신용보증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심사.평가 기준의 공개 확대, 심사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제도를 활성화하는 방안 등도 강구 중이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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