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입양 8년만에 1천명…가톨릭 '성가정입양원'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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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할머니, 나 00야…"

"아이구 이놈아 거기가 어디냐?"

"여기 집이야. 할머니…. 엄마가 전화 걸어주시면서 할머니께 인사드리라고 해서…. "

"그래 엄마가 전화 걸었다고, 그래 엄마 좀 바꿔줄래…. "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김할머니 (80) 의 목소리가 떨렸다.

장내를 가득 메운 청중들이 눈물을 훔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김할머니는 당시 입양간 초등학교 3학년인 손자가 "행여 어른들 몰래 전화를 건 것이 아닐까하는 겁이 앞섰다" 고 말을 이었다.

자식 둘을 두고 초혼에 실패한 아들이 다시 재혼해 아이를 낳고 1년 6개월만에 이혼, 손자 셋을 키우던 김할머니는 불치의 병까지 찾아들어 막내손자의 입양을 결심하게 됐다.

입양간 집에서 잘 지낸다는 전화를 받은 김할머니는 "한번 손자를 보러 놀러오시라" 는 양부모의 권유까지 받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자를 찾지 않았다.

냉정하지만 그 집에 정을 붙이라는게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13일 서울성북구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대강당에서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성가정입양원 (원장 김도미니카 수녀) 이 국내 입양 1천명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14일까지 계속되는 이 행사에는 김할머니와 같은 생부모측과 양부모.입양아동등 '입양 3자' 가 나와 체험을 나누는 이야기 마당이 마련됐고 입양수기공모 시상식과 가수 이광조.안상수.신형원등이 출연하는 '아기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 도 펼쳐진다.

89년 설립한 성가정입양원은 국내 유일의 '국내입양' 전문기관. 영아수출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씻고 '우리 아기는 우리 손으로 키우자' 는 취지 아래 설립된 기관이다.

성가정입양원은 89년 64명의 입양을 성사시킨 이래 지난해까지 총 9백54명의 아이들을 양부모와 연결시켜 주었고 올해 국내입양 1천명을 돌파하게 됐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2천80명, 국내입양은 1천2백29명. 해외입양이 국내보다 두배 가까이 차지하고 있어 아직도 국내의 입양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도미니카 수녀는 "80년대에는 한해 거의 7천~8천명의 아동을 해외로 보냈고 90년대 들어 잠시 주춤했던 해외입양이 최근 다시 증가하는 추세" 라며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의식이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부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왜곡된 시선 때문에 입양 사실이 비밀로 숨져지는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편견을 바로잡고자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고 말했다.

현재 성가정입양원에서 돌보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32명. 어려운 여건이지만 직원 20명과 자원봉사자 50여명이 보모로 나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또 부설 미혼모의 집에서는 15세 전후의 미혼모들을 보호.상담하고 있다.

정부의 후원은 연간 운영비의 2% 수준에 그친 미약한 실정이지만 관심을 갖는 신자들의 후원과 영아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들로 운영하고 있다.

"단지 팔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주먹질과 따돌림을 당하는 어린 아이들의 사회는 너무나 큰 슬픔이고 ××를 만드신 창조주께 대한 모욕이었습니다.

차라리 두 다리가 없어서 아이가 집밖을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모진 생각을 잠깐씩 해보기도 했습니다…. " 한쪽 팔이 없는 장애아동을 입양한 한 양어머니의 수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언지를 되새기게 한다.

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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