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정치] 탈당 경력 있어야 “정치 좀 했다” 소리 듣는 한국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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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탈당의 이력”

지난 10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13년간 몸담았던 자신의 ‘친정’, 민주당을 떠났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은 민주당과 궤를 같이했습니다. 초년병 시절 그는 민주당의 입(대변인)이었고, 후신인 열린우리당에선 의장을 지냈습니다. 그런 그가 4·29 국회의원 재선거에 전주 덕진 출마를 바랐지만 당은 공천 배제를 결정했습니다. 불과 1년 반여 전 이명박 대통령과 맞서 싸운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그는 출마를 위해 탈당을 결행합니다.

우리 정치에서 대선주자나 거물급 정치인들의 탈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탈당 경력이 있어야 “그래도 정치 좀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입니다.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종필(JP) 전 총리, 즉 3김도 예외는 아닙니다.

1987년 당시 신민당 이민우 총재(작고)의 이른바 ‘이민우 구상’이 분란을 일으킵니다. 몇 가지 대전제를 바탕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주장하던 내각제를 수용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해 말 대선만 학수고대하고 있던 YS와 DJ에겐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죠. 결국 이들은 4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겠다”며 탈당을 선언합니다. 소속 의원 90명 중 상도동·동교동계 74명도 보스를 따라갔습니다. YS와 DJ는 함께 통일민주당을 창당합니다.

하지만 창당서의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그해 7월 전두환 정권은 DJ의 해금을 발표합니다. 대선 출마의 길이 열린 DJ는 다시금 통일민주당을 탈당, 평화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결국 그해 대선에서 양 김은 분열돼 출마했고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됩니다.


충청권의 맹주 JP는 신민주공화당 총재이던 90년 YS와 3당 합당(민자당)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둘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YS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 JP는 95년 탈당해 자민련을 창당했고, 96년 총선에서 50석을 확보합니다.

97년 대선의 ‘클라이맥스’는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의 신한국당 탈당 및 출마였습니다. 당내 경선에서 이회창 당시 대표에게 패한 그는 경선에 불복, 이 대표의 패배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이후 ‘경선 패자는 탈당해 출마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이인제 방지법’이 만들어지기에 이릅니다.

탈당으로 인한 타격이 누구보다 컸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역시 2007년 대선 직전 탈당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를 두 번이나 대선 후보로 만들어 준 한나라당을 떠난 겁니다. 그는 무소속 출마로 ‘대권 3수’를 시도했고, 이후 선진당을 창당했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한 박근혜 전 대표도 ‘탈당의 추억’이 있습니다. 2002년 초 이회창 당시 총재의 당 운영을 비판하며 당을 나온 겁니다. 물론 대선 직전 복당해 이 총재를 도왔지만 반대 세력엔 두고두고 비판거리가 됐습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박근혜 ‘빅2’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다 탈당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 후보는 최근 탈당한 정동영 전 장관의 몫이었습니다.

길지도 않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대선주자급 거물들의 탈당이 이토록 많은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양당제가 정착되지 못한 정치 풍토를 가장 큰 이유로 꼽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탈당이 정계 개편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다음번엔 또 누가 탈당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될까요.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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