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죽어야 산다’ 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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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대마불사(大馬不死)’에서 ‘사즉생(死卽生)’으로.

제너럴 모터스(GM)에 대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결론이 결국 파산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너무 규모가 커 경제·사회 전반에 끼칠 영향이 막대하기에 죽일 수 없다(Too big to fail)”던 입장에서 “죽여야만 다시 살릴 수 있다”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올 초만 해도 오바마 대통령은 “파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자동차 업체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자신의 지지 기반인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입장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바마 대통령은 궁지에 몰렸다. GM과 크라이슬러에 각각 134억, 4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들이 가져온 자구책도 기대에 못 미쳤다. 노조와 채권자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좀처럼 풀지 못했다. 결국 오바마 정부는 어정쩡한 구조조정으로 GM을 ‘돈 먹는 하마’로 방치하느니, 일단 파산시킨 뒤 완전히 뜯어고쳐 새 출발 하는 게 미국 자동차 산업을 위하는 길이라고 결론짓게 된 것이다.

뉴욕 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오바마식 자동차 살리기를 ‘외과수술’에 비유했다. 마취를 한 뒤 환부에 메스를 대는 것처럼 일단 파산을 통해 노조·채권단의 입김을 무력화한 뒤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법원에 파산신청을 한 뒤 새로운 업체를 세워 GM의 우량 브랜드와 자산만 인수토록 하는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브랜드나 공장 등은 잔존 법인에 남겨 둔다. 골칫거리였던 직원·퇴직자에 대한 의료보조 약정도 여기에 남긴다. 잔존 법인은 부실자산 집합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 ‘굿(Good) GM’과 ‘배드(Bad) GM’으로 회사를 분할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재기를 꾀한다는 게 오바마 정부의 목표다. 50억~70억 달러만 투입하면 굿 GM은 2주 안에 파산보호 상태를 벗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신 7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배드 GM의 부실자산은 수년에 걸쳐 청산하게 된다.

이날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보유 중인 GM의 채권을 신설될 굿 GM의 주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34억 달러나 되는 정부 보유 부채를 없애 GM의 부담을 줄여주는 한편, 사실상 회사를 국유화함으로써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아무튼 GM의 운명이 최종 결정되는 것은 6월 1일 이후다. 정부가 3월 말 GM이 가져온 자구책을 돌려보낸 뒤 새 대책을 마련하기까지 딱 60일의 말미를 줬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간에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지각 변동은 불가피하다. 굿 GM이 정상화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리는 데다, 경쟁력을 갖춘 뒤라도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GM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트럭 등의 생산시설을 폐쇄할 경우 북미지역에서 총 생산량은 무려 23%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연비가 좋은 소형차 위주로 굿 GM을 꾸린다 해도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2년 이상이 걸릴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 기간에 현대차 등 아시아 업체가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제전문지 배런스는 조만간 북미 시장이 ‘아시아차 대 포드’로 양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GM의 생산 능력이 줄고 크라이슬러가 무너진 자리를 이들이 채울 것이란 이야기다. 특히 최대 수혜자 중 하나로 소형차 분야에 강점이 있고 생산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현대차를 꼽았다.

그러나 GM이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면 아시아 업체들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우증권 박영호 애널리스트는 “(미국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한동안 북미 시장에서 현대차가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자동차 업계의 판도가 결정될 중요한 시기인 만큼 어떤 전략을 짜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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