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발등의 불"…IMF재협상론에 대외신용 급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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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외환위기가 자칫 대외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정도의 난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11일에도 '걱정없다' 고 밝혔지만 세계금융시장은 싸늘한 시선으로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다시 두단계나 낮췄고 정부은행인 산업은행의 채권마저 정상적인 외국금융기관에서는 인수하지도 않는 '정크본드' 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달러 차입금 상환요구는 시시각각 몰려들고 있다.

현 상태에서는 연말까지 필요한 외환과 쓸 수 있는 외환의 차이를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한국은행은 국가부도를 면하기 위해 IMF와 미국.일본 등의 추가 자금지원이 있기까지 국제결제은행 (BIS) 으로부터 70억~80억달러의 급전 (브리지론) 을 빌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 대선후보들의 재협상 발언 등으로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신용도가 악화되고 있어 성사 가능성이 크지 않아 최악의 경우 외국 정부 및 금융기관들과 빚갚는 일정을 재협상하는 이른바 리스케줄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11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이달중 갚아야 할 달러 빚은 1백50억달러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 가운데 IMF와의 약속 (연내 가용 외환보유고 1백12억달러 유지) 을 지키면서 빚갚기에 돌려 쓸 수 있는 돈은 78억5천만달러선에 불과해 추가로 달러를 빌리지 못하는 한 71억5천만달러 가량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IMF의 추가지원 (오는 18일 35억달러) , 아시아개발은행 (ADB) 과 세계은행 (IBRD) 의 지원 (각각 20억달러) 을 다 받아도 그렇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이 IMF의 자금지원을 계기로 뉴욕시장에서 20억달러의 자금조달에 나섰으나 미국의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두단계나 강등하면서 11일 설명회를 포기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도쿄 (東京) 금융시장에서도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제히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신규대출을 동결하고 만기가 돌아오는 기존 대출금에 대한 상환을 독촉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상황이 외환시장에 전해지면서 달러환율은 이틀째 상승제한폭까지 치솟으면서 거래가 중단되는 마비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한편 이날 외환시장이 이틀째 마비상태를 보이자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강만수 (姜萬洙) 차관.정덕구 (鄭德龜) 제2차관보 등 간부들과 외환시장 안정대책을 긴급 논의했다.

林부총리는 시장이 안심할 만한 수준의 외환확보가 시급하다고 보고 IMF.IBRD.ADB 등으로부터 자금 도입을 앞당기는 한편 미국.일본 등 지원의사를 밝힌 국가들에 협조융자를 조기에 해줄 것을 강하게 요청키로 했다.

이에 따라 林부총리는 이날 ADB로부터 연내 20억달러, 내년 1월중 10억달러 등 모두 40억달러를 도입하는 '금융분야 구조개선 프로그램' 차관협상을 타결지었다.

재경원 관계자는 ADB측이 오는 22일 한국 국회에서 공공차관 도입을 승인하면 23일 중으로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워싱턴·도쿄 = 김수길·이철호 특파원, 고현곤·남윤호·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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