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멍에 아닌 명예 ‘영원한 청년’ 최상호 3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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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상의에 검정 바지. 단정한 옷차림새는 변함이 없었다. 18번 홀(파5·531야드)에 올라서는 그를 두고 장내 아나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영원한 청년”이라고 소개했다. 홀까지 약 6m 거리를 남겨놓은 버디 찬스. 공동선두를 달리던 그는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넣으면 무조건 우승이고, 2퍼트만 해도 승부를 연장으로 넘기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퍼팅의 달인’으로 불리는 그의 명성을 감안하면 우승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공은 홀을 지나쳐 1m 거리에 멈춰 섰다. 갤러리 사이에 ‘아하’ 하는 탄식이 터져나온 것도 잠시, 이번엔 손쉬운 파퍼팅마저 홀을 지나쳤다. 노장의 얼굴엔 아쉬움이 스쳤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듯 동반 라운드하던 아들뻘의 강경남(22·삼화저축은행)·박효원(22)과 악수를 나눈 뒤 그린을 떠났다.

12일 경남 김해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파72·7002야드)에서 끝난 KPGA투어 토마토저축은행 오픈 최종 4라운드. 54세의 베테랑 최상호(카스코·사진)는 막판까지 선전을 펼치며 아들뻘 선수들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우승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 3라운드에서 3타 차 단독선두에 올라서며 자신이 갖고 있는 최고령 우승 기록(50세) 경신에 도전했던 그는 마지막 날 16번 홀까지 선두를 달리다 17번(파3)과 18번(파5) 홀에서 잇따라 보기를 하면서 다 잡았던 우승 트로피를 놓치고 말았다. 4라운드 합계 7언더파로 김형성(29)·김형태(32) 등과 함께 공동 3위.

최상호는 프로 데뷔 32년째를 맞는 노장이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실력으로 보여줬다.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255야드에 그쳤지만 3라운드까지 평균 퍼팅 수 1.56개로 전체 선수 가운데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도 우승에 대한 중압감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막판 2개 홀에서 나온 3퍼트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최상호는 “안타깝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KPGA투어 국내 개막전인 이번 대회 우승은 강욱순(43·안양베네스트)이 차지했다. 72번째 홀까지 합계 8언더파로 정준(38)과 동타를 이룬 강욱순은 연장 세 번째 홀에서 파 세이브를 해 이 홀에서 3퍼트 끝에 보기를 한 정준을 따돌리고 통산 열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드라이브샷도 아이언샷도 아닌 ‘퍼팅’이었다.

강욱순은 “지난해 8월 우승한 뒤 샷감각을 되찾았고, 드라이브샷 거리도 280야드 정도 나가 자신감을 얻었다. 젊은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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