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앞둔 민두기교수와 제자 백영서교수의 정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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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제자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칭은 '총통' 이었다.

꼭 '독재자' 를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스승의 학문적 권위에 대한 존경과 애정의 표현이기도 했다.

거기에는 나름의 연유가 있다.

제자를 공부시키는데 조금의 아량도 베풀지 않았다.

처절한 훈련과정 때문에 공부를 포기한 학생도 많았다.

그 덕에 그가 길러낸 교수군단 (?) 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총통' 본인은 물론 세계적인 학자다.

아마도 인문사회과학자중 그만큼 해외저널에 많은 논문을 싣고 인용빈도가 높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는 누구냐고? 정년퇴임을 앞두고 오는 8일 마지막 강의를 하는 서울대 민두기 교수 (동양사.65) 다.

그는 떠들썩한 행사를 마다하고 이날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대 7동 110호에서 평소대로 학생들에게 강의한다.

그의 제자인 백영서 교수 (연세대.동양사)가 비가 추적이는 날 스승의 연구실을 찾았다.

사제간의 만남이 오붓할 것 같아 보였다.

평소에 묻기 어려웠던, 궁금했던 이야기들도 오늘은 나오지 않을까. 기자가 엿본 사제간의 정담 (情談) 은 이렇게 시작됐다.

- 제가 남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까 선생님을 닮아간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선생님만의 독특한 교육방침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특별한 방침이란 건 없어.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었지. 호된 훈련이라고들 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는 훈련일 뿐이야. 또 우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했지.

- 선생님께 배운대로 학생들을 엄격하게 가르치려다 보니 때로는 주위 여건 때문에 약해지기도 합니다.

▶나 자신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중학시절 나에게 영향을 준 선배 한 분을 생각했어. 정치학도였던 그분이 빨치산이 되어 불행한 최후를 맞기에 앞서 자기 몫까지 공부해달라는 말을 나에게 남겼는데 그것은 항상 나를 다그치는 큰 힘이 됐어. - 선생님을 무서워했지만 때로 섬세한 분이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엄격하면서도 세심하려면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을텐데요.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없었어. 머리가 복잡해지면 시집을 읽었어. 그래서 시집을 모았지. 그림도 좋아해서 화집도 수집했고. 사진찍기도 좋아했어. 조금씩 찍다보니 사진의 각도에 따라 대상들이 다르게 표현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어.

- 그런 섬세한 면들이 역사에 대한 선생님의 독특한 통찰력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의 책은 서양사람에 의해 자발적으로 번역될 정도인데, 선생님의 어떤 역사적 통찰이 먹힌 것일까요.

▶서양학자들은 초기에 중국의 전통과 근대의 개화를 '단절' 로 파악했어. 대신 나는 중국의 근대화 과정을 정상적인 역사적 발전으로 보았지. 외형적으로는 단절이지만 그 내부는 전통의 힘과 무관하지 않지. 내부의 변화를 추적해 밖으로부터의 변화와 대응시켜 연구하려는 시각이 이들에게 새롭게 보였던 거지. 예를 들어 중국의 입헌제도도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고 전통적인 중앙집권.분권의 논쟁에서 분권적 사고와 결합된 거라는 거지.

- 선생님의 학문하는 자세가 후학들에게 영향준 바가 큽니다.

국제경쟁력은 외국의 시선을 의식하는 일이 아니라는 데서 특히….

▶외국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그 아류가 될 뿐이지. 우리의 학문수준이 높아지면 외국학자들은 자연히 관심을 갖지. 일본의 중국 연구는 상당한 수준이야. 외국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좋은 연구가 많이 나오니까 외국학자들은 일본어를 공부하지. 우리는 아직 그 수준은 아니지만 점점 한국을 중시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 곧 나올 선생님의 수필집 ( '한송이 들꽃과 만날 때' ) 교정을 보면서 94년 제가 선생님을 모시고 국제학술대회에 갔을 때 외국인들 사이에 저를 혼자 두고 온 것이 의도적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 교육방침의 하나인데 자네에게도 혼자서 견뎌내라는 것이었어. 처음 국제회의에 가면 스승 옆에 머무르고 싶지. 모르는 학자들이고 외국어도 어렵고. 하지만 직접 접하며 외국어 표현법도 다듬어지고 자신감도 붙지….

- 요즘 학생들이 외국어 공부는 물론 외국유학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학문세계나 통상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이지 말솜씨가 아니야. 말만 잘 하면 생각이 저절로 나온다고 생각은 잘못이지. 실력이 쌓이고 그 내용들이 말로 표현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어학을 게을리하라는 것은 아니야. 표현할 것을 쌓는 일이 표현기술보다 중요하다는 얘기야. 유학도 자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일정한 훈련을 위해 외국에 가는 것은 인정하지만 외국학위는 인정치 않는 일본의 학문풍토를 배워야 해. 토착적 학문 성과가 있고 외국의 것을 흡수해야지.

- 50~60년대는 특히 학문하기가 정말 어려운 시대였는데요. 어떻게 학문의 길을 지킬 수 있었는지요.

▶그 시기에는 자유인임을 실증하려 노력했고 그 노력이 알아주지도 않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었어. 좀 우스운 얘기지만 어린시절 반장을 계속하다 낙선한 뒤 소위 권력이라는 게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자유인을 꿈꾸게 된 것이 이때부터야. 계속 권력의 맛에 젖어버렸다면 지금 다른 사람이 됐겠지. 허허….

- 매우 상징적으로 들립니다.

학계는 권력으로부터 유혹이 많은 곳인데…. 제가 학부 2학년때 학문과 현실을 놓고 선생님께 상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치는 체질적으로 싫어했어. 또 사회참여가 아무리 정당성을 갖는다 해도 학문을 지배하면 학문은 불모가 돼. 일부에서는 학문을 위한 학문만을 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학생시위가 가장 많은 문제학과여서 갈등도 많았어. 학생제적문제를 놓고 총장과 담판을 벌인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신기할 정도야.

-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주제넘지만 역사란 어려움이 많은 학문인 것 같습니다.

다시 젊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모든 학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겠지. 다시 기회가 오면 사회과학을 더 공부하고 싶어. 역사학의 성과를 더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사회과학 방법론을 역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지. 기초공부를 충분히 한뒤 새로운 것을 조심스럽게 시도해야 해.

- 선생님 성격에 정년퇴임 후 놀지는 않으실테고, 무엇을 계획하고 계세요.

▶못 읽은 책 읽는 것이 우선이고, 중국사 연구성과를 일반에게 쉽게 전하는 일을 다음으로 잡고 있지. 교육 일선의 부담을 덜어냈으니 해낼 수 있을 거야. 정리 = 김창호·곽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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