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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미사일 협정 때문에 고성능 고체연료 로켓은 못 만들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9호 13면

국내 유일 우주기지인 나로우주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민경주(56·사진) 센터장은 약소국의 설움을 가슴에 품고 있는 과학자였다. 그는 인터뷰 내내 7월 KSLV-I 발사에 대한 의미뿐 아니라 “불합리한 한·미 미사일 협정 때문에 위성로켓 발사 기술을 발전시키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

-이번 KSLV-I 발사의 의미는.
“이번이 우리 땅에서 발사하는 첫 위성로켓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위성은 모두 외국에서 발사했다. 지금은 비록 러시아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2017년이 되면 우리도 100% 자력으로 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로켓 발사의 핵심 부분인 러시아의 1단 로켓은 기술 이전이 안 됐다.
“이번 준비 과정을 통해 발사대 기술을 100% 국산화한 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러시아 연구원들과 수백 차례 성능시험을 한 것도 기술 습득에 큰 도움이 됐다. 최근 러시아의 로켓 발사대 회사 사장단이 나로우주센터를 둘러봤는데 ‘한국이 일을 너무 잘한다’며 러시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 새 발사대를 짓는 데 참여해 달라고 요청까지 했다.”

-로켓 발사가 수차례 연기됐는데.
“2005년 러시아와 관련 협정을 맺었다. 그때부터 발사대 설계공사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미사일 기술보호협정 때문에 일정이 늦어졌다. 발사대를 완성하고 나서도 러시아가 당초 계획보다 훨씬 더 엄격한 인증시험을 요구하면서 계속 차질을 빚었다.”

-개발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러시아에서 온 연구원 100명 중 20명은 보안요원이다. 회의가 있으면 반드시 참석한다. 러시아의 1단 발사체가 조립되는 조립동은 러시아 대사관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못 들어간다.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에 보안이 철저하다. 문화가 다른 러시아 연구원들과 같이 일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
다.”

-지난 5일 북한이 은하 2호를 발사했는데
“우주기술을 경쟁하는 과학자로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로켓 발사를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력투구하고 있다. 우리도 한·미 미사일 협정이 풀리고 시간과 돈이 주어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우주로켓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

-한·미 미사일 협정이 우리나라 우주개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협정에 우주개발과 관련한 제한 규정이 있다. 액체연료만을 쓰는 우주로켓 개발에는 제한이 없다. 하지만 고체로켓은 총추진력 100만 파운드 이상의 규모로는 개발할 수 없게 돼 있다. 100만 파운드는 1단 로켓의 힘이 소진된 뒤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힘이다. 본격적인 우주로켓을 쏘아 올리려면 추진력이 강한 고체연료를 쓰는 로켓이 필요하다. 안타깝다.”

-미국이 왜 고체연료 로켓 개발을 막고 있나.
“고체연료는 언제든 로켓에 저장해 둘 수 있기 때문에 군사용 미사일로 쓰기에 적합하다. 반면 액체연료는 장시간 놔두면 연료탱크를 부식시키기 때문에 발사를 앞두고서야 발사체에 주입한다. 따라서 고성능 고체로켓 기술 개발은 곧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개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염려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민 센터장은 인하대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애크런대에서 고분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ICBM과 우주왕복선 엔진을 개발하는 미국 방산업체 시오콜(Thiokol)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다 1989년 ‘해외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국방과학연구소(ADD)를 거쳐 2001년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우주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우연이지만 민 센터장의 이름 ‘경주(庚:별 경, 宙:집 주 )’도 우주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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