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원조 이현우 재기음반 4집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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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본격적인 힙합을 한 가수는 누구일까. 서태지? 많은 사람들은 92년봄 서태지가 등장하기 직전 '꿈' 이란 곡으로 데뷔한 재미교포 출신가수 이현우를 힙합의 원조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흥겹지만 따라하기는 힘든 리듬, 끈적끈적한 회색 빛깔의 분위기…. 당시로는 낯설기만했던 노래를 그는 듣는 이들의 귀에 쫙쫙 달라붙게 불렀다.

적지않은 인기를 얻었지만 그보다 한국에 흑인음악 장르의 본격적인 대중화를 알렸다는데 더 큰 의의를 얻은 노래였다.

서태지가 랩을 한국화한 영웅으로 칭송받는 동안 이현우는 힙합의 묘한 매력을 전파한 전도사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꿈' 의 주인공이 성취한 꿈은 이듬해 터진 대마초파동으로 오래 가지 못했다.

이때 받은 상처로 이현우는 한국을 떠나 미국등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4년. 간간이 귀국, 앨범 두장을 발표했지만 반향을 얻지못해 잊혀진 가수로 치부돼온 그가 오랜만에 귀에 '쫙 붙는' 노래를 들고 나타났다.

비발디의 '사계' 를 타고 흐르는 보컬이 진하고 애절한 '헤어진 다음날' .그의 4번째 앨범인 '프리 윌 오브 마이 하트' 의 타이틀곡으로 출시 한달동안 잠잠하다가 라디오에서 소개되면서 청취자들의 관심을 끌더니 1주만에 5만장 가까이 팔리는 인기를 모으고 있다.

팝송을 좀 듣는 사람이라면 이 노래가 요즘 미국팝계에서 한참 유행중인 힙합가수 퍼프 대디나 쿨리오의 샘플링 송 스타일을 따랐음을 금방 알수 있을 것이다.

샘플링송이란 기존 히트곡을 저음 (Low Resolution)에 깔고 여기에 독립된 멜로디를 입혀 새로운 노래로 재탄생시키는 것. 폴리스의 83년 명곡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 를 배경음으로 깐 퍼프 대디의 '아일 비 미싱 유' (빌보드1위)가 잘 알려져있다.

기존곡을 차용 (샘플링) 한 원죄를 안은 장르인만큼 독립된 멜로디 부분이 기존곡에 얼마나 잘 삼투되느냐가 샘플링송의 관건이다.

이점에서 이현우는 힙합과 록, 그리고 트롯까지 다양한 장르를 조금씩 섞되 어느 하나에 고착되지않은 그만의 팝적인 보컬로 나름의 답을 내고있다.

여기에는 지난 4년동안 힙합에서 올터너티브로, 브릿팝으로, 테크노로 자기에게 맞는 음악을 찾아 끊임없이 헤맨 이력이 숨어있다.

대중성과 자기만의 색깔을 병치시킨 4집의 구조는 그런 방황의 소산이면서 현재도 방황을 계속하고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샘플링송이지만 가요에 가까운 '헤어진 다음날' 근처에 흑인음악적인 '정통' 샘플링송 '마지막 대화' 를 배치한 것이 그렇다.

(이 노래는 미국의 인기 랩작곡자 트루 마스터가 직접 랩을 불렀다) 또 프로디지풍의 테크노넘버 '나는 카우보이가 되고싶다' 를 끝에 첨가한 것도 욕심많은 가수의 면모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안정과 변화사이에서 엄격한 균형을 추구하다보니 자기검열이 개입됐는지 원래 의도했던만큼 제 목소리를 터뜨리지 못한 듯해 아쉽다.

이 음반의 또다른 소득은 잘 연주된 힙합리듬이다.

큰북과 작은북등 드럼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매끈하게 조합해 좀처럼 재현하기힘든 흑인음악 분위기를 잘 살리고있다.

'꿈' 을 비롯해 업타운과 이뉴의 1집에서 능숙한 편곡솜씨를 과시했던 프로듀서 김홍순씨가 이 숙성된 리듬감각의 주인공이다.

가요계에선 '헤어진 다음날' 의 히트로 김씨의 흑인음악 장르에서 위상과 역할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고있다.

가요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해, "반성해요. " 대답은 짧고 표정은 우울했다.

글 = 강찬호 기자 사진 =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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