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연패 무산' 서울대 야구팀의 슬픈사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올 1백40연패 (連敗) 의 꿈 무산! 그래서 그들이 우울하다면 말이 되는 걸까. 서울대 야구팀 얘긴데 실제 그렇다.

77년 재창단된 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물론 내년 1백50연패의 '위업' 달성 목표도 물거품이다.

올초 대학야구연맹이 대한야구협회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야구부의 표류는 시작됐다.

등록자격요건이 '고교재학중 야구선수로 대한야구협회에 등록되어 활동한 자' 로 바뀐 탓이다.

대학야구연맹 조창진 (52) 사무국장의 변 - "정규심판 투입등 비용적 측면과 서울대와의 경기 내용은 각종 개인기록에 제외시켜야 하는 점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처음엔 등록비 3백만원이 없어서 출전을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동창회등으로부터 "돈을 대주겠다" 는 격려가 이어졌다.

심지어 서울대 인근 음식점 주인까지 지원의사를 내비쳤다.

"우리들에 대한 선배들과 사회의 관심을 새삼 느낄 수 있었죠. " 담당조교인 천영진 (24) 씨의 얘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아마추어 같지 않은 우리 아마추어 야구에 적지 않은 의미를 남긴 것 아닐까요. " 역설적이지만 서울대팀은 경기장에 묘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벤치만 지키고 있던 다른 팀의 후보선수들에게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줬다.

어차피 진정한 아마추어 세계에선 강자에게만 기회가 돌아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여기다가 심판 판정에 절대 복종하는 깨끗한 매너까지. 강타자를 하위타선에 포진시켜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위장 타선' 전법등 참신한 작전을 구사해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2루는 기본, 3루는 선택' '석패 (惜敗) 와 분패 (憤敗) 의 차이' 같은 신조어도 탄생시켰다.

상대팀 선수는 안타를 치면 무조건 2루를 훔치고 기분 내키면 3루까지 간다는 뜻과 서울대가 점수를 내면 석패, 못내면 분패라는 의미다.

선수선발과 운영방식도 독특하다.

매년초 가입희망자들에게 간단한 테스트를 실시, 10명 정도를 뽑는다.

체육교육학과와 타과가 반반 정도. 2학년까지 남는 건 3~4명에 불과한 데서 훈련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경기 기록과 분석을 맡는 '여학생 주무 (主務)' 라는 직책 또한 이 팀의 특색으로 현재 영어교육학과 1년생 박유진양이 임무를 수행 중이다.

게다가 주장 오강록 (체육교육과 2년) 군의 말대로 고정팬까지 있을 정돈데…. 그래서 올 상황은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대한야구협회가 주관하는 백호기등 3개 대회는 출전할 수 있었던 게 불행중 다행이었다.

"내년에는 일본 도쿄대등과 국제 교류전을 추진해볼 생각입니다.

이대로 꺾일 순 없으니까요. " 조교 천씨가 아쉽게 시즌을 끝내고 특유의 '스토브 리그' 에 들어가며 다지는 각오다.

프로야구처럼 스카우트 전쟁이나 물밑 신경전을 벌이는 스토브 리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난로 옆에서 학업에 빠져드는 것 말이다.

이들의 목표는 1승이다.

그날이 오면, 모든 신문의 1면 톱기사는 '사회체육, 드디어 엘리트체육을 꺾다' 가 될지 모를 일. 하지만 연패기록이 현재의 1백31에서 멈춰서는 것은 원치 않는다.

진정한 아마추어는 져도 져도 아름다우니까.

강주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