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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출마 논란 속 노무현 악재 터져 … 민주당 패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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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민들은 빠른 속도로 미래로 나가길 바라실 텐데 국민이 원치 않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시인한 다음 날인 8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공식적 유감 표명은 없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다만 기자들의 계속되는 질문에 “당황스럽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걱정하실 듯한데 같이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만 했다.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右)이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검찰의 박연차 회장 수사가 공평하고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최고위원(左)은 이날 회의에서 "국민과 당에 누를 끼쳐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출마 논란 와중에 닥친 ‘노무현발 태풍’으로 민주당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도부의 처방은 ‘노무현과 선 긋기’였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연유로 이 돈을 받게 됐는지 명백히 진위가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 같은 충격과 자괴감을 느꼈다”며 “이 사건을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의 형평성 문제도 계속 거론했다. 송 최고위원은 “박연차 로비는 지난 권력과 살아있는 권력 양자에 다 걸친 사건”이라며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 방침에 반대해 눈길을 끌었다. 박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설마설마 했더니 불행한 일이 드디어 발생했다”면서도 “전직 대통령에 걸맞은 예우와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 송금 특검에 의해 구속됐다 무죄를 받았었다.

◆“MB 심판” 밀어붙이는 정세균=정 대표는 이날 울산·경주 지역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하려던 일정을 취소한 채 전략 공천 문제 등 선거 전략 수립에 매달렸다. 그는 ‘MB 정부 1년 심판’이라는 민주당의 선거 전략을 계속 밀고 나갔다. 최고위원회에서 그는 “재·보선은 (MB정부의) 경제 무능과 특권 세력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강조했다. 기자들에겐 “MB 정권 심판 문제와 과거지사(박연차 수사)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재·보선 컨트롤 타워인 선거기획단을 윤호중 전략기획위원장, 유기홍 전 의원, 윤후덕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 친노 색채가 짙은 인사들을 주축으로 꾸렸다. 윤 위원장은 “국민들에겐 지나간 일보다 이명박 정권의 경제 실정이 더 크고 현실적인 문제일 것”이라며 “선거 전략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에선 이런 지도부의 판단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초선의원은 “안 그래도 정권 1년 만에 심판론을 제기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젠 적용 불가능한 전략이 됐다”며 “국민들이 노무현과 민주당을 얼마나 구분해 생각해 주겠느냐”고 걱정했다. 옛 민주계 의원은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드러내는 게 국민과의 소통의 출발점”이라며 “직간접적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부터 하는 게 그나마 (재·보선의) 승산을 높이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검은 노짱이 싫다”=민주당의 친노무현 인사들은 고개를 떨궜다. 친노 그룹의 대표 격인 안희정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지난 1년은 너무 지독하고 힘들었다. 때만 벗기는 것이 아니라 생살까지 벗겨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이 돈의 용처로 언급한 “갚지 못한 빚”에 대해 안 최고위원은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전에 연락을 받은 바 없다. 적절한 자리에서 해명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건 발생과 대책 마련 과정을 알지 못했던 친노 인사들 사이에선 “우리는 내놓은 자식이었던 같다”는 소외감마저 표출되고 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동요했다. 노사모 홈페이지와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는 관련 글 수백 건이 올라왔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느냐” “역시 솔직한 노통” 등 그를 감싸는 글이 다수였지만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검은 돈, 검은 노짱이 싫다” “진정으로 믿었건만 슬프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임장혁·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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