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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일본, 뺨 때려준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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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00여 명의 인파가 모여 있기에 비집고 들어가니 철책 너머로 지대공 요격미사일인 패트리엇 미사일(PAC3) 발사대가 훤히 보였다. 미사일이 장착된 발사기 4대가 45도 각도로 누운 채 서북쪽 상공을 겨냥하고 있었다. 발사기 방향으로 불과 300m 정면에는 38층짜리 고층 맨션이 우뚝 서 있었다.

방위성 정문에서 5분가량 걸어가니 2㎞에 걸쳐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도쿄의 벚꽃놀이 명소가 나왔다. 그런데 웬일. 벚꽃 길은 한산했다. 미사일 공포는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벚꽃 구경까지 멈추게 한 것이다.

“메이지(明治) 때 해리 파크스 주일 영국공사 이야기 아세요? 그는 늘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거만하게 굴었죠. 어느 날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똑같이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고 파크스 공사를 맞았답니다. 버럭 화를 내는 파크스 공사에게 사이고는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어, 난 이게 당신 나라 예의인 줄 알았는데…’. 이제 일본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야 합니다.”

한 일본인 교수가 7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신문 기사를 인용하면서 한 이야기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의 의견과 비슷하다. 정치권도 이를 부채질한다. 6일 자민당 국방부회에서는 “적 기지를 선제공격하도록 하자” “미군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도 조기경계위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발언이 쏟아졌다. 급기야는 7일 자민당 사카모토 고지(坂本剛二) 조직본부장의 입에서 “일본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다른 나라 미사일이 자국 영공을 통과하는데 어찌 조용히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부산스러운 일본 내 반응을 보면 뭔가 개운치가 않다.

실제 일본이 두려워해야 할 북한 미사일은 ‘스커드C’(사정거리 500㎞), ‘노동’(1300㎞) 같은 중거리 탄도미사일이지, 이번 같은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아니다. 일 정부도 이를 시인한다. 또 PAC3를 도쿄 한복판에 세워놓고, 주변 주민들에게 주의나 대피권유 한마디 없이 쏠 수 있을 것으로 본 군사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일종의 ‘쇼잉(showing·보여주기)’이었다. 한마디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어떻게든 군사력 증강에 나서고 싶어 하는 일본 내 보수세력에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됐다.

2006년 7월 북한이 동해를 향해 7발의 탄도미사일을 쐈을 때도 일본에선 지금과 똑같은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그걸 계기로 보수우익 세력이 결집해 불과 3년도 채 안 되는 사이 공중급유기·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유도탄 등 ‘적 기지’ 공격에 유효한 수단이 속속 자위대에 새롭게 도입된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별로 없다. 일본은 야금야금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난 북한의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미사일 발사 직후 “위 아 해피(We are happy)”라고 한 말이 왠지 일본 보수세력의 말처럼 들려 두렵기만 하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