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과거 잘못' 잇단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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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1세기를 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맞기 위해서는 20세기의 묵은 때를 과감히 벗겨내야 한다.

종교계가 다른 분야보다 앞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의 경우 일제시대와 70,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일부 종교인들이 보인 그릇된 행태에 대한 반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반면 외국 종교계는 2차대전 당시의 행위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조계종은 다음달 9.10일 이틀간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과거의 뼈아픈 잘못을 뉘우치는 자리를 갖는다.

'민족문화수호와 전법 (傳法) 을 위한 조계종지도자회의' 로 이름붙여진 이 회의에는 원로스님을 제외하고 교구본사주지.중앙종회의원.각종위원회위원스님등 조계종 지도급 승려 모두가 참석한다.

총 3백여명으로 예상된다.

이 회의에서는 그동안 민족종교로 자처해온 불교가 사회적 지도력을 상실한 현실을 놓고 ▶승풍 (僧風) 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고 ▶70,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불교가 오히려 '어용' 으로 나섰으며 ▶무분별한 불사 (佛事) 로 민족문화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등 반성이 다각도로 논의된다.

불교지도자들은 이어 불사에도 문화적 요소와 환경문제를 충분히 고려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사회적으로 실천하자는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할 계획이다.

그동안 민주화운동에 대체로 적극적이었던 천주교에서는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공했던 병인양요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났다.

최기복 신부등 인천가톨릭대 교수단은 최근 "병인양요 과정에서 조선 천주교 신자들이 길안내.통역.정보제공등으로 프랑스군에 협력한 것은 조선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 정부의 식민주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행동이어서 쇄국정책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고 반성했다.

이들은 아울러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인들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를 조속히 반환해줄 것을 프랑스 정부에 촉구했다.

이에 앞서 개신교측에서도 일제치하 기독교인들의 신사참배와 친일행위를 뉘우치는 '한국교회참회록' 과 개신교 내부의 금권선거.갈등구조등을 뉘우치는 참회문이 각각 발표된 바 있다.

한편 외국에서는 프랑스와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프랑스 가톨릭의 경우 지난 9월 2차대전 당시 유대인 7만5천명을 추방함으로써 이들이 나치에 희생당하게 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 57년간의 침묵을 깨고 공식 유감을 표시했다.

올리비에 데 베랑제 대주교는 유대인을 나치수용소로 실어날랐던 파리 교외의 한 기차역에서 "우리는 신의 용서를 빌며 유대인들이 우리의 참회의 소리를 들어주기를 간청한다" 고 선언했다.

2차대전 전범 (戰犯) 국가인 일본에서는 일본 성공회가 앞장섰다.

지난 11일 일본 종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일본성공회교회가 2차대전을 전후해 종교인들이 '일본의 식민통치와 침략을 묵인한 죄' 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것. 현재 세계 종교계에서는 로마교황청이 과거 반 (反) 유대주의에 관대했던 점, 나치의 유대인학살 당시에도 침묵을 지킨 점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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