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문화, 세상으로 뛰쳐나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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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문화의 주요 영역인 그래피티 팀 ‘JNJCREW’의 유인준(안경 낀 사람)·임동주씨가 서울지하철 신도림역 부근에서 벽에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작업을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작가 김경윤(46)씨는 두 아들 및 아내와 함께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부근의 라이브클럽 ‘빵’을 방문했다. 올 들어 인디음악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초등학교 6학년짜리 큰아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빵’ 부근에 있는 ‘살롱 바다비’. 1인당 1만5000원을 내고 입장하면 주인이 병맥주를 건네 준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인디밴드의 공연을 즐긴다. 대기하는 악단들도 청중과 섞여 앉아 어울린다. 공연을 보러 온 이우창(35·의사)씨는 “방송에서 보여주는 밴드 공연은 가수 위주인 반면 이곳에서는 밴드 구성원들이 제각각 악기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삼일로에 있는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만난 관객 장부연(37·여)씨는 “이곳에서는 다른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를 많이 보여준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심건(30)·오근재(25)씨는 요즘 홍익대 부근에서 활동하는 인디음악가들의 활동 모습을 음악비디오로 촬영하는 게 주된 일과다. 이들이 촬영을 통해 얻는 수익은 없다. 오히려 자비를 털어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동영상을 홈페이지(www.laviashow.com)에 올려 인디문화를 홍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심씨는 “문화를 밖으로 퍼다 나르는 게 우리의 주된 임무”라고 밝혔다. 음악에 인디음악, 영화에 독립영화가 있다면 미술에는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주로 벽에 낙서처럼 칠하거나 스프레이로 뿌려 만드는 그림)가 있다. 그래피티 팀 ‘JNJCREW’의 임동주(31)·유인준(31)씨에게 벽은 ‘그림판’이면서 ‘종이’요, ‘놀이터’다. 이들에게 미술학도들이 쓰는 캔버스는 너무 비좁다. 그래서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한다. 유씨는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아이디어를 벽에 고스란히 표현해 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디가 뜨는 이유는 뭘까.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48) 교수는 “지난해 9월 발생한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가 형성된 게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한다. 대중 사이에서 ‘신자유주의적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생기면서 대중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인디문화로 향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해 출범한 현 정부가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권으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에 반발하는 계층이 탈권위적 배경을 가진 인디문화를 좋아하게 됐다”는 정치적 해석도 내놨다.

인디문화 전문가 김민정(30·여)씨는 인디문화 부활을 이렇게 해석했다. “색다른 것을 원하는 대중과 다양성, 실력, 실험성 면에서 우수한 인디밴드의 ‘코드’가 맞아 떨어졌다.” 그는 “인디는 이제 비주류가 아니다”고도 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홍익대 앞 상상마당에서는 ‘독립영화, 어디로 가는가’란 제목의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영화 ‘워낭소리’ 배급사인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는 “관객이 250만 명이나 몰린 영화 한 편보다는 10만~20만 명짜리 영화가 여러 개 나오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인디 열풍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꾸준한 관심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인디문화(Indie Culture)=인디는 인디펜던스(Independence·독립)의 줄임말. 인디문화란 ‘돈을 버는 상업적 목적에서 독립한(벗어난) 문화’라는 뜻이다. ‘주류(Major) 문화’의 반대 개념이다.

홈 레코딩 직접 해보니…
녹음부터 편집까지 2시간이면 OK

지난달 말 서울 서교동 홍익대 부근의 한 오피스텔. 이불·그릇 등 가재도구 사이로 컴퓨터·마이크·스피커 등 음악 장비가 보인다. 인디 음악 가수 세이디(Sayde·본명 최혜현)의 ‘홈 레코딩(Home Recording)’ 현장이다.

“여기서 음반 제작이 가능하냐”고 묻자 프로듀서 곽원일(29)씨는 “컴퓨터와 오디오카드·마이크만 있으면 쉽게 작업할 수 있다”고 답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가상 스튜디오 프로그램이 개발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6년 발매된 세이디의 1집 앨범 ‘프리퍼퓸’을 비롯해 많은 인디 음반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기자는 이날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직접 레코딩 작업에 참가했다. 컴퓨터를 켠 뒤 기타 반주 녹음, 노래 녹음을 거쳐 최종 편집까지 걸린 시간은 2시간 남짓. 마침내 기자가 부른 세이디의 곡 ‘아침’의 녹음이 마무리됐다. 세이디는 “그동안 작곡, 녹음, 편곡은 물론 앨범 재킷과 홈페이지 제작까지 프로듀서 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직접 했다”고 밝혔다. 가수가 음반 한 장을 제작하려면 최소 5000만원이 드나 홈 레코딩을 하면 100만~200만원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이수연 대학생NGO기자

취재해 보니…
사람 냄새 풀풀 … 인디 미래는 밝다

‘인디 열풍’이라는데 사실일까.

왼쪽부터 중앙일보 대학생 NGO기자 이윤석(고려대 사학과 3년)·이수연(서울교대 초등교육과 3년)·김인정(연세대 영어영문학과 4년)임지현(서울대 사회교육과 4년)·강민경(한양대 사회학과 4년)씨.


취재하는 동안 온갖 라이브 클럽과 독립영화 상영관,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을 만한 벽에서 계속 서성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에게 ‘인디 열풍’을 느끼고 있는지 숱하게 물어보았다. 인디는 특이한 사람들만 누리는 문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현장에서 접한 인디에선 진짜 ‘사람 냄새’가 풀풀 나고 있었다. 막상 취재를 마치니 인디문화의 ‘무심함’이 느껴진다. 열풍이 불든 말든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사람과 현장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한국 인디문화의 미래는 밝다.

사진=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