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리야'…다섯살 동심에 비친 프라하의 절망과 희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5살 순진한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콜리야' (Kolya) 로 지난해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체코감독 얀 스베라크는 "챌리 채플린의 '키드' 에서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를 얻었다" 고 밝힌 적이 있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세상에 홀로 던져진 아이와 양아버지 사이의 어색함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정들기' 과정이 때로는 미소를, 때로는 눈물샘을 자극하며 펼쳐진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비슷하다.

그러나 스베라크 감독은 88년 자신의 나라인 체코의 사회변화를 그 관계 속에 자연스레 녹여낸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개개인의 상처회복은 곧바로 정치적인 문제의 회복에 대한 희망과 연결된다.

주인공 콜리야는 바로 이런 회복을 가져오는 상징적인 존재다.

이해할 수없는 슬픈 상황을 순수한 마음으로 버텨내려고 애쓰는 아이를 통해 화해와 회복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영화는 인간적인 감동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아이와 같은 순진한 세계관에 머무른다.

콜리야로 인해 따스함을 되찾는 사람은 양아버지 루카. 소련에 대한 적대감으로 냉소적인 태도가 몸에 밴 독신남으로 소련에 대한 불경스런 농담, 동생의 서구망명 때문에 체코필하모닉에서 쫓겨난 첼리스트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1년전인 88년 체코의 프라하. 소련지배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점점 노골화되고 있는 시점이고, 많은 동구사람들의 시선이 서구를 동경하던 때다.

콜리야의 어머니 역시 서구로의 망명을 도모하는 소련여자. 그녀와 위장결혼했다가 그녀가 독일로 망명하는 바람에 콜리야만 떠맡은 루카의 신세는 곧 소련에게 이용당하는 체코의 정치적인 상황을 연상시킨다.

세상에 대한 적개심 반 포기 반으로 매사에 냉소적이며 필요할 때 여자와 사랑은 하면서도 마음은 던지지 않는 삶의 태도 역시 소련의 벽 속에 영혼이 갇혀버린 체코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의 마음은 당연히 체코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소련아이' 콜리야를 거부하지만 소년의 순수한 사랑 앞에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없다.

콜리야로 인해 그는 여자의 사랑도 얻는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콜리야를 통해 무너져가는 소련체제를 암시하는 영화는 동서냉전체제의 종식과 함께 새로운 화해의 반전을 맞는다.

아역배우의 깜찍한 연기는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서 보더라도 보편적인 감동을 안겨준다.

12월13일 개봉.

이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