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산미치광이의 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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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이솝 우화 한 토막인데 낯익은 장면 아닌가. 그렇다. 딱 북한 모습이다.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는 연명하기도 어려운 주제에 툭하면 가시를 곧추세운다. 그래서 상대가 움찔하면 그때마다 활동영역을 조금씩 넓혀간다. 고슴도치 모습 그대로다. 1993년 사거리 1000㎞의 노동1호를 발사하고 제네바 합의에서 다시는 그런 짓 안 하는 대가로 경수로 지원을 약속받은 뒤 이번 은하2호 발사가 네 번째다. 그때마다 지원되는 양도 커졌지만 미사일의 발사거리도 배로 늘어났다. 발사 실패로 체면이 안 서면 그때는 핵실험이다. 가시가 안 닿으면 방귀라도 뀌는 거다. 2006년 대포동2호 발사 실패 때 그랬고 이번 역시 그럴 개연성이 높다.

2006년 핵실험 때도 북한을 고슴도치에 빗대 썼던 기억이 있다. 북한 스스로 고슴도치를 자처하는 까닭이다. 호랑이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는 자랑이다. 2년여가 지난 오늘 북한의 모습은 더 이상 고슴도치가 아니다. 비슷하지만 몸집이 훨씬 큰 호저에 가깝다. 비록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진 못했다지만 당초 목표가 그게 아니었으니 실패만도 아니다. 조금씩 발사거리를 늘려가고 노하우를 축적하면 그만이다. 우라늄 농축 기술과 기폭 능력은 이미 가졌다. 핵탄두 소형화와 장거리 운반 능력만 키우면 되는 일이다. 서둘러 할 돈도 없지만 천천히 해도 아쉬울 거 하나 없다. 유엔 안보리가 열리고 제재다 뭐다 법석을 떨어도 실효성 있는 제재수단이 없다. 아랫목 차지하고 누운 한 성깔 호저를 찔러봐야 저만 아프다. 호저가 뒹굴 수 있는 공간만 넓어질 따름이다.

우화와 현실이 다른 건 결론 부분이다. 고슴도치에게 해피엔딩이 안 된다는 얘기다. 고슴도치가 호저로 몸집을 키운다고 집주인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코 앞에 가시가 닿은 뱀이 찔리고만 있겠나. 돌멩이라도 물어올 게 뻔하다. 일본의 재무장이 눈앞에 보이는 이유다. 일본이 필요 이상의 호들갑을 떤 것도 경제대국에 걸맞은 군사대국화를 바라는 ‘혼네(本音)’ 이상이 아니다. 98년 대포동1호 때 길어진 그들의 창날이 이제 더 날카로워질 게 분명하다. 북한의 로켓 발사를 쌍수 들어 환영한 일본 극우파의 만면에 행복이 넘친다. ‘보통 국가’로 포장된 일본의 재무장은 우리에겐 불행의 씨앗이고 만병의 근원이다. 총을 쥐면 쏘고 싶어지는 법이고 겨눌 곳은 한쪽뿐이다. 불행은 혼자 다니지 않는다. 그렇잖아도 대양해군을 꿈꾸는 중국이 먼 산 보듯 할 리 없다. 군비확장 경쟁이 되풀이되는 건 필연이다. 중간에 낀 우리에겐 불행을 넘어 대재앙이다. 이번 사태를 발사 실패라고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우리말로 호저는 ‘산미치광이’다. 끝내 저 다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미치광이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면 단호한 태도 말고 방법이 없다. 오버할 필요도 없지만 나무만 심고 있어서도 안 된다. 계속 도발하면 가시가 모조리 뽑힐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어느 부위든 본때로 우선 몇 개 뽑고 말이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