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대표회장·부녀회장·관리사무소장·통장이 ‘4대 권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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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해 7월 서울 압구정동 A단지.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가 부녀회 회장과 부회장 등 4명을 상대로 법원에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부녀회가 단지 시설을 알뜰시장 상인에게 내주고 매달 450여만원을 챙겨 임의로 사용했다는 이유였다.

#2. 2005년 잠실지역 3000가구 대단지의 입대의 회장인 박모씨는 하루아침에 자리에서 쫓겨났다. 같은 동에 사는 주민들이 불신임해 동 대표 자격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주차장을 두 군데 이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통장이 주민들에게서 불신임 서면 동의를 받아낸 것이다. 박 회장은 불신임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례는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일어나는 권력 다툼의 전형이다. 단지 내 실력자는 입대의 회장, 부녀회장, 통장, 관리사무소장 등 이른바 ‘아파트 4인방’이다. 4인방의 위상은 단지마다 다르다. 입대의 회장이 제왕처럼 군림하는 곳이 있는 반면 부녀회장이나 통장, 심지어 관리사무소장이 입대의 회장을 꼭두각시처럼 부리는 곳도 있다. 물론 견제와 균형으로 민주적 아파트 관리가 실현된 단지도 적지 않다.

입대의 회장 주민이 뽑은 ‘단지 총리’다. 공동주택관리규약이 정한 법정기구가 입대의다. 엄격한 자격 요건이 정해져 있다. 지자체가 권장하는 표준규약에 따르면 입주자는 동 대표를 뽑고, 동 대표는 호선으로 입대의 회장과 이사·감사를 뽑는다. 주민 10% 이상이 원하면 회장을 입주자가 직접 선출할 수 있다. 직선이든 간선이든 주민 대표로 뽑힌 만큼 아파트 단지에서는 최고 실력자다. 이권을 주무를 수 있어 ‘입대의 회장’이 평생 직업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수뢰·횡령으로 뒷돈을 챙기다 전과자가 된 회장도 수두룩하다. 전횡을 일삼다 해임되기도 한다. 회장은 입대의 과반수 의결로 해임할 수 있다. 동 대표로 뽑아준 입주자 3분의 2가 불신임 동의를 해도 해임된다. 일종의 탄핵이다.

부녀회장 막후 실력자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강남 아줌마들보다 못하다”고 비난했다. 이 대통령이 말한 아줌마가 바로 부녀회다. 부녀회는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에 따른 부녀회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봉사단체다. 입대의와 마찰을 빚는 알뜰시장 등 수익사업은 봉사 재원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부녀회가 단지 내 실세로 통하는 것은 부녀회원이 동 대표로 진출하거나 통·반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녀회가 사실상 법정기구인 입대의를 장악하거나 배후 조종한다는 얘기다. 반대로 입대의가 부녀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수익사업에 시비를 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녀회원의 동 대표 겸임을 금지하는 단지도 있다.

관리사무소장 일상적 관리 업무를 책임지며 입대의 의결 사항을 집행한다. 입주민의 손발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간혹 주민 위에 군림하려는 소장이 있다. 관리사무소장이 동 대표를 해임하는 사건도 일어난다. 부녀회장과 손잡고 입대의 회장을 불신임한 사례가 있다. 입대의가 구성돼 있지 않을 때(최초 및 해산된 경우) 관리사무소장이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사조직이나 다름없는 입대의를 구성하기도 한다. 입주민이 법령에 밝지 않은 점을 노려 관리 예산을 횡령하거나 뇌물을 받고 외부 업체에 공사를 맡기는 소장도 적발되곤 한다. 최근 주택관리사보 등 자격증 소지자가 늘어나면서 전문화하는 추세다.

통·반장 왕년엔 더 잘나갔다지만 여전히 실세다. 통장의 특기는 가가호호 방문이다. 통·반장은 여러 곳에서 폐지되긴 했으나 주민 모임인 반상회를 주관한다. 반상회에 불참하면 관리비에 벌금 5000~1만원을 추가해 징수하는 곳도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는 이들의 선거 개입이 문제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했다. 요즘에도 통장은 동사무소나 파출소의 공무원과 잘 통한다. 입주자를 직접 찾아가 도장 받는 능력에선 추종을 불허한다. 마음만 먹으면 입대의 대표나 동 대표를 무력화할 수 있다. 입대의나 부녀회의 추천으로 통장이 임명되는 곳도 적지 않다. 통장은 매달 수당을 받는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25개 구청 산하 통장은 1만3600여 명, 반장은 10만3000여 명에 달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년간 통장에겐 342만원, 반장에겐 5만원 정도를 지급하느라 516억원의 예산을 썼다. 통장의 자녀에게는 장학금이 지급되기도 한다. 불경기에 이 정도 자리라면 꽃 보직이 아닐까. 따라서 통장이 골치 아픈 아파트 관리에 개입할 정도면 분란이 심각한 단지라고 봐야 한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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