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부실·구조조정 기업들, 부동산 안파나 못파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기업들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부동산 매각을 서두르고 있으나 정작 팔리는 물건은 극히 적다.

지난해부터 부도 또는 부도유예협약, 화의 등에 들어간 부실기업들중 한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업들이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부동산 매물을 쏟아놓고 있다.

여기에다 쌍용.두산.나산.신호그룹등도 자구 또는 구조조정을 겨냥해 부동산 매각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매각 실적은 극히 미미하다.

한신공영처럼 한 평도 못 판 기업도 있다.

매물이 폭주해 값도 많이 내려갔지만 사려고하는 데가 없는 실정이다.

땅을 갖고 있기만 하면 돈을 버는 '부동산신화' 가 무너진지 오래인데다 팔고 사는 데 부담해야할 각종세금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 실태 = 부실기업들은 부채상환.운영자금 확보등을 위해 공장부지는 물론 백화점.아파트 부지.사옥등 각종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고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룹들의 매각실적은 계획대비 10% 내외에 불과하고 한 건도 팔지 못한 데도 있다.

가장 많은 매물을 내놓은 곳이 기아그룹이다.

기아는 7월15일 부도유예협약에 들어간 직후 아시아자동차 광주공장부지를 비롯해 1백15건 2조4천8백여억원어치 (기아 추산) 의 부동산을 내놨다.

이중 팔린 것은 16건 1천3백29억원. 금액기준으로 5.4%만이 팔렸다.

기아는 일간지에 매각광고를 두차례 냈고 7월말에는 매각설명회를 갖기도 했다.

팔린 물건도 용인연수원.김포장기리 아파트부지등 수도권소재 목좋은 곳으로 한정됐다.

나머지 회사들의 매각실적도 금액기준으로 계획대비 ▶진로 13.3% ▶해태 15% ▶대농 1.9% ▶뉴코아 19.2%에 불과하다.

한신공영.쌍방울은 한건도 팔 지 못했다.

건영은 서울 중지도등 매각대상부동산이 있으나 안팔릴 것을 우려해 아예 내놓지도 못하고 있다.

◇ 왜 안팔리나 = 가장 큰 이유는 올들어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매물이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매물 덩치가 큰 것들이 많아 수요자가 대기업으로 한정되는 것도 주요원인이다.

기아그룹 전략기획팀 지철구 (池喆銶) 과장은 "경기침체와 부도위기로 부동산을 내놓는 기업은 많아도 사려는 기업은 없지않느냐" 고 말했다.

기업이 더이상 버틸 수 없을만큼 어려워진 다음에야 부동산을 내놓아 매각시기를 실기 (失機) 하는 것도 문제다.

한신공영박현준 (朴賢俊) 영업부장은 "차라리 부도가 빨리 났더라면 땅팔기는 훨씬 수월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침체도 매각을 어렵게하는 요인이다.

대한부동산신탁 김정렬 (金淨烈) 영업기획팀장은 "주거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동산정도만 관심을 끈다" 고 분석했다.

부동산을 팔 때의 만만챦은 세금부담도 큰 걸림돌이다.

양도세 (특별부가세) 및 주민세로 양도차익의 22% (부실기업에 한해서는 내년부터 면제) 를 우선 내야한다.

또 부동산 매각이익이포함된 법인의 연간 이익에 대해 30.8%를 법인세및 주민세로 내야한다.

만일 기업이 소유한 땅을 원래 목적에 사용하지 않고 다시팔면 비업무용으로 분류돼 지방세가 중과된다.

◇ 전망및 해결책 = 앞으로 자구노력 차원에서의 부동산 매물은더 쏟아져 매물압박은 더 심해질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토지취득을 쉽게 할수 있도록 해줘야한다고 지적한다.

한솔세무회계사무소의 조혜규 (曺惠圭) 회계사는 "특별부가세와 법인세는 이중과세이기 때문에 특별부가세율을 대폭 내리든지 폐지해야한다" 고 주장했다.

그는 또 비업무용 토지규정도 완화 또는 폐지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정책실 양금성 (梁金承) 선임조사역은 "기업이 구조조정차원에서 내놓은 농지나 임야에 대한 토지거래허가. 농지취득자격증명. 주거래은행의 취득승인등의 제한을 완화하고, 공장신증설제한등의 각종 제한을 받고있는 수도권소재 토지에 대해서도 심의기준을 완화해야 기업들의 부동산매각이 활발해질 것" 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가격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돈되는 땅' 을 먼저 내놔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두산그룹 기조실 김철중 (金哲中) 상무는 "시세대로 가격을 받으려 고집하지 말고 현금흐름에 도움이 된다면 돈을 덜 받더라도 알토란 같은 땅부터 과감히 팔아야한다" 고 권고했다.

신성식·김창규·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