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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추천한 명의] 이영탁 삼성서울병원 교수 →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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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삶 자체가 생존 투쟁인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결코 화려하고 빛나는 의사의 길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마음만 불편할 뿐이다. 1년, 아니 10년, 20년을 한결같이 도움의 손길을 줘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벌떡 일어나는 기적 같은 회복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귀한 생명이기에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는 의사가 있다. 근육병, 루게릭병, 척수성 근위축증 등 몸을 가누기 힘든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강성웅(49) 교수가 그런 사람이다.

글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 강정현 기자

강 교수가 어릴 적부터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는 인문학이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 때도 문과반 학생이었다. 하지만 고3 때 친지 중 뇌성마비 자녀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인을 돕는 의사가 되기로 진로를 바꿨다.

‘장애인에게도 분명 뭔가 도와줄 일이 많이 있을 거야….’

그가 이런 결심을 하며 의대에 진학했던 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복지 문제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건강한 사람도 아플 땐 병원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병원 치료나 재활 시설은 열악했다.

“팔다리만 다쳐도 길을 건너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어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택시도 사정사정해 이용할 정도였어요. 외출 자체가 힘들다 보니 병원 문턱은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 교수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하지만 그는 연세대 의대 입학 이후 일편단심으로 ‘장애인을 돕는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재활의학 분야를 알게 되면서 ‘내가 갈 길’임을 직감했다. 재활의학과는 1회 전문의 시험을 치른 게 1983년일 정도로 국내 도입이 늦었던 분야다.

강 교수는 1989년 강남세브란스(옛 영동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전공의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중증 장애인을 돕는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지도교수는 미국에서 재활의학을 전공한 뒤 귀국해 국내에서 근육병 환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치료해 온 문재호 교수다.

근육병은 말 그대로 근육이 병든 상태다. 가장 흔한 진행성 근이양증은 근육이 지방이나 결합조직으로 대체돼 나날이 전신 근육의 힘이 없어진다. 18개월 무렵 겨우 시작한 걸음마는 배를 앞으로 내밀고 뒤뚱거리면서 걷는 정도다. 이때쯤 부모들은 “아이의 걸음이 이상하다”며 병원을 찾는데 “진행만 할 뿐 치료법은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는다.

실제 환자들은 12~13세면 서 있기도 곤란해 휠체어의 도움을 받는다. 물론 이 생활도 오래가지 못해 결국엔 누워 지낸다. 환자들은 대부분 성인이 되는 20대가 되면 호흡 근육이 마비돼 결국 사망한다.

한창 꿈을 키우며 살아야 할 시절에 매일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사는 환자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인공호흡기를 착용하는 상황이다. 목에 구멍을 뚫고 관을 넣어준 뒤(기도 절개) 커다란 인공호흡기에 연결시켜 주는 치료법인데 일상생활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고통을 덜어준 사람이 강 교수다. 1999년 미국 뉴저지의대에서 연수를 마친 뒤 귀국한 그는 기도 절개 없이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는 호흡재활 치료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입이나 코에 마스크만 착용한 상태로 이동할 수 있는 작은 인공호흡기로 호흡 장애를 치료하기 시작했어요. 사용 방법을 익히고 재활 훈련을 거치면 밤에만 사용한 뒤 낮엔 호흡기 없이도 정상생활을 할 수 있어요.” 강 교수는 자신의 치료법을 자랑스레 설명한다.

강 교수의 이 치료법은 근육병 환자뿐 아니라 루게릭병, 척수성 근위축증, 사고로 인한 목 신경 손상 환자 등 폐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폐를 움직이는 근육의 힘이 약한 호흡기 질환자 모두에게 해당된다.

물론 치료를 한다고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진 않는다. 감기만 들어도, 또 그날 컨디션에 따라 환자 상태는 갑자기 나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강 교수는 재활의학과 교수지만 병원 내에서 응급전화를 가장 많이 받는 의사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인공호흡기 치료법과 달라 강 교수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엔 하룻밤에 세 번 응급 환자를 본 적도 있어요. 처음엔 집에 막 도착하자마자 입원한 루게릭병 환자 때문에, 두 번째는 첫 환자 치료 후 막 집 앞에 차를 세우는 순간 근육병 환자가 호흡이 곤란하다며 병원에서 전화를 했지요.” 그는 ‘아무래도 오늘은 응급환자가 몰리는 날’이란 생각에 병원 연구실에서 지냈다. “먼동이 틀 무렵 집에 잠시 들르기 전 혼자서 병실 회진을 돌았는데 이번엔 창가에 입원한 근육병 환자의 인공호흡기에서 ‘삑삑’ 거리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새벽이 되면서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 거죠.” 재활의학과 의사가 된 지 20년이 지난 강 교수는 현재 호흡재활뿐 아니라 척수 손상 재활, 뇌 손상 재활, 통증 재활 등 다양한 환자를 진료한다. “도움이 되는 한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강성웅 교수. 그런 그를 만난 날은 세상이 유난히도 훈훈하게 느껴졌다.

이영탁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성직자 같은 마음 있어야 가능한 일 하고 있어요”

“무슨 분야건 불모지 같은 상황에서 뭔가를 처음 시도해 본다는 건 쉽지 않아요.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가 된다는 건 사명감이 강하지 않고선 선택하기 힘들지요. 강 교수는 바로 이런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난치병 환자의 호흡 재활 분야를 국내에 처음 도입하고 활성화한 사람이에요.” 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 이영탁(사진) 교수는 강성웅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교수와 강 교수는 대학도, 수련 병원도, 전공도 서로 다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만나서 식사 한 번 한 적도 없다.

그래도 이 교수는 강 교수의 장애인 사랑과 치료에 매진하는 소식을 전해 들어 알고 있다.

“외과의사는 수술로 환자의 운명이 갈리기 때문에 이른 시일 안에 환자로부터 인정도 받고 날마다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과 질환도 좋은 치료제나 새로운 시술로 위급했던 환자 상태가 급반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요즘은 암 환자도 절반은 완치되는 시대 아닙니까? 하지만 근육병·루게릭병·척수성 근육위축병처럼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희귀·난치병 환자의 자활을 돕고 일상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것은 성직자 같은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교수는 기자에게 같은 의사의 길을 걷는 한 사람으로서 강 교수에게 존경심을 표한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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