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시장이 아닌 시장 만능주의가 문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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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호 35면

자본주의의 주류 패러다임으로 30년간 군림했던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 앞에서 힘이 많이 빠진 듯하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마저 “자유 방임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국제적인 금융 규제 방안을 논의했다.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던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의 시대는 갔다며 좌파 진영은 노동·토지·화폐의 상품화에 반대했던 1940년대 헝가리 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이론까지 들춰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미래를 둘러싼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대안적 이론들이 자본주의의 새 버전으로 삼을 만큼의 동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그럼에도 귀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있다.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이나 시장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반성이다.

최근 미국 경제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행동주의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듀크대) 교수의 이론을 이런 관점에서 음미해 보면 신선하다. 그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는 두 개의 세계, 즉 사회 규범이 지배하는 세계와 시장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가 있다.

이스라엘의 한 탁아소는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을 줄이겠다며 벌금을 부과했다. ‘미안한 마음’에 퇴근 후 서둘렀던 부모들은 벌금제가 생긴 뒤 오히려 느긋해졌다. 부모-교사 관계라는 사회적 규범이 ‘돈을 내면 된다’는 시장 규칙으로 바뀐 탓이다. 결국 탁아소는 벌금제를 없앴다. 그러자 부모들은 “이젠 벌금까지 없어졌다”며 아이를 더 늦게 찾으러 왔다.

그는 “사회 규범과 시장 규칙이 충돌하면 사회 규범이 밀린다. 다 피어 버린 장미처럼 사회 규범이 한 번 시장 규칙에 밀리게 되면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미국 퇴직자협회는 몇몇 변호사에게 가난한 퇴직자들을 위해 시간당 30달러에 법률 서비스를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모두 거절했다. 시간이 흐른 뒤 담당자는 다시 변호사들에게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많은 변호사가 응했다. 공짜가 30달러보다 가치 있는 것일까. 돈이 언급되면 변호사들은 시장 규칙을 적용해 보상이 작다고 판단한다. 반면 돈이 언급되지 않으면 사회 규범을 적용해 기꺼이 봉사한다는 얘기다.

돈의 유혹이 아무리 달콤해도 돈이 오가지 않는 사회 규범, 예컨대 명예나 명분, 사회적 보상, 평판을 통한 격려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는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새로운 논의는 인간을 지극히 합리적인 경제인으로만 생각했던 오류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시장 규칙이 우리의 삶을 지나치게 잠식해 들어올 때 현대인들은 불행해지고, 경영자들은 단기 실적주의에 빠져 오늘날 위기가 생긴 건 아닐지.

그렇다면 시장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고, 잘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지 진지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경제만 풀리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식의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드는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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