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새벽까지 술 마시다 사고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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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최은배 판사는 28일 광고대행사 직원 원모(33)씨가 "업무 때문에 기자와 술을 마시다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쳐 뇌출혈이 일어난 것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최 판사는 "술자리 약속은 업무상 필요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새벽 4시가 넘도록 세차례에 걸쳐 술을 마신 것은 업무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만약 저녁식사 후 한차례 정도 술자리를 갖고 밤 12시가 되기 전에 자리를 마쳤다면 업무의 연장으로 볼 여지가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문제가 된 그날의 술자리를 '업무'로 볼 수 있느냐'였다. 최 판사는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사적이고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자리"라고 엄격하게 해석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같은 단발성 음주가 아니라 평소 일의 성격상 술을 많이 마신 근로자가 누적된 음주.과로로 병에 걸린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를 폭넓게 인정해 주고 있다.

앞서 서울고법은 영업 실적 때문에 자주 술을 마시다 간경화로 숨진 모 자동차회사 직원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 "성과급을 위해 자발적으로 술을 마신 점이 있더라도 업무의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도 최근 "기자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술상무' 노릇을 하다 숨졌다"면서 지방자치단체 공보 담당 공무원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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