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서핑차이나] 신북학파(新北學派)를 양성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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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지금의 중국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은 오랑캐들이다”라며 조선시대 선비들은 청(淸)나라의 중국을 얕잡아보고 무시했다. 대신 ‘죽은 아이 고추 만지듯’ 이미 망한 명(明)나라만 찾았다. 자신들이 마치 중국 문화의 적자(適子)인양 '소중화'를 외쳤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제국 미국이 휘청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여전히 욱일승천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조선시대를 보는 듯하다. 미국이라면 껌벅 죽는다. 어학연수도, 유학도 미국이 O순위다. 어떤 조직이건 파워 엘리트는 거의 모두 미국파다.

지금은 세계사적 패러다임 전환기다. 완곡하게 비유하자면 미국은 명나라다. 중국은 청나라인 셈이다. 오랑캐라고, 못산다고 얕볼 상대가 이미 아니다.

92년 한중 수교 이래 수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경험했다. 더럽고, 우리보다 못사는 '비천한 중국' 이미지의 여행기가 판을 쳤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이후의 중국은 90년대 우리가 보았던 중국이 더 이상 아니다. 전 세계에서 미국과 '맞짱'을 뜨는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다.

1781년 북학파 박제가가 지은 《북학의(北學議)》에 연암 박지원이 서문을 썼다. 그 내용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래에 전문을 싣는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한국은 중국과 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을 잘 알아야한다. 지금부터라도 ‘네오 북학파’를 국가 차원에서 양성해야 한다. 미국의 중요성은 여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나라 배우기를 무시하다가 쇄국으로 이어졌고 끝내 망국의 나락에 빠진 선조들의 전철을 또 밟아서는 안된다. '역사함'의 이점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북학의서(北學議序)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심지어 동복(僮僕)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더 많이 안다면 우선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만 같지 못하다고 부끄러이 여겨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종신토록 고루하고 어쩔 방법이 없는 지경에 스스로 갇혀 지내게 된다.
순(舜) 임금은 농사짓고 질그릇을 굽고 고기를 잡는 일로부터 제(帝)가 되기까지 남들로부터 배우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는 젊었을 적에 미천했기 때문에 막일에 능한 것이 많았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막일 또한 농사짓고 질그릇을 굽고 고기를 잡는 일 따위였을 것이다. 아무리 순 임금과 공자같이 성스럽고 재능 있는 분조차도, 사물에 나아가 기교를 창안하고 일에 임하여 도구를 만들자면 시간도 부족하고 지혜도 막히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순 임금과 공자가 성인이 된 것은 남에게 잘 물어서 잘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선비들은 한쪽 구석 땅에서 편벽된 기운을 타고나서, 발은 대륙의 땅을 밟아 보지 못했고 눈은 중원의 사람을 보지 못했고,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을 때까지 제 강역(疆域)을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학의 다리가 길고 까마귀의 빛이 검듯이 각기 제가 물려받은 천성대로 살았고, 우물의 개구리나 밭의 두더지마냥 제가 사는 곳이 제일인 양 여기고 살아왔다. 예(禮)는 차라리 소박한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누추한 것을 검소하다고 여겨 왔으며, 이른바 사민(四民 사(士) · 농(農) · 공(工) · 상(商))이라는 것도 겨우 명목만 남아 있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도구는 날이 갈수록 빈약해져만 갔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배우고 물을 줄을 몰라서 생긴 폐단이다.
만일 장차 배우고 묻기로 할진대 중국을 놓아 두고 어디로 가겠는가. 그렇지만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의 중국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은 오랑캐들이다.” 하면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여, 중국의 관례마저도 다 함께 얕잡아 무시해 버린다. 저들이 진실로 변발(辮髮)을 하고 오랑캐 복장을 하고 있지만, 저들이 살고 있는 땅이 삼대(三代) 이래 한(漢), 당(唐), 송(宋), 명(明)의 대륙이 어찌 아니겠으며, 그 땅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삼대 이래 한, 당, 송, 명의 유민(遺民)이 어찌 아니겠는가. 진실로 법이 훌륭하고 제도가 아름다울진대 장차 오랑캐에게라도 나아가 배워야 하거늘, 하물며 그 규모의 광대함과 심법(心法)의 정미(精微)함과 제작(制作)의 굉원(宏遠)함과 문장(文章)의 찬란함이 아직도 삼대 이래 한, 당, 송, 명의 고유한 관례를 보존하고 있음에랴.
우리를 저들과 비교해 본다면 진실로 한 치의 나은 점도 없다. 그럼에도 단지 머리를 깎지 않고 상투를 튼 것만 가지고 스스로 천하에 제일이라고 하면서 “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산천은 비린내 노린내 천지라 나무라고, 그 인민은 개나 양이라고 욕을 하고, 그 언어는 오랑캐 말이라고 모함하면서, 중국 고유의 훌륭한 법과 아름다운 제도마저 배척해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장차 어디에서 본받아 행하겠는가.
내가 북경에서 돌아오니 재선(在先 박제가(朴齊家))이 그가 지은 《북학의(北學議)》 내외(內外) 2편을 보여 주었다. 재선은 나보다 먼저 북경에 갔던 사람이다.
그는 농잠(農蠶), 목축(牧畜), 성곽(城郭), 궁실(宮室), 주거(舟車)로부터 기와, 대자리, 붓, 자〔尺〕 등을 만드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헤아리고 마음으로 비교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았고,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배웠다. 시험 삼아 책을 한 번 펼쳐 보니, 나의 일록(日錄 《열하일기(熱河日記)》)과 더불어 조금도 어긋나는 것이 없어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 같았다. 이러한 까닭에 그가 진실로 즐거운 마음으로 나에게 보여 준 것이요, 나도 흐뭇이 여겨 3일 동안이나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것이 어찌 우리 두 사람이 눈으로만 보고서 그렇게 된 것이겠는가. 진실로 비 뿌리고 눈 날리는 날에도 연구하고, 술이 거나하고 등잔불이 꺼질 때까지 토론해 오던 것을 눈으로 한번 확인한 것뿐이다. 요컨대 이를 남들에게 말할 수가 없으니, 남들은 물론 믿지를
않을 것이고 믿지 못하면 당연히 우리에게 화를 낼 것이다. 화를 내는 성품은 편벽된 기운을 타고난 데서 말미암은 것이요, 그 말을 믿지 못하는 원인은 중국의 산천을 비린내 노린내 난다고 나무란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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