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국립오페라단 '아라리공주'…합창에 음악적 비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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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참신한 소재… 합창에 음악적 비중 국립오페라단 '아라리공주' 자신의 죽음을 담보하지 않고서는 진실한 사랑을 쟁취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는 10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상연중인 오페라 '아라리 공주' (대본 고봉인, 작곡 최병철) 는 사랑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내놓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신라와 백제간의 전투로 얼룩진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여성의 사랑과 비극적인 죽음을 다루고 있어 전형적인 낭만주의 오페라다.

어릴 때 정혼한 사이인 유달장군 대신 적국의 학자 파을백을 사랑하는 아라리 공주의 '선택' 은 힘보다는 지혜를 더 높이 살 줄 아는 자아성숙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오페라는 단순히 두 남자 사이에서 삼각관계로 갈등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 차원을 넘어 복잡한 암시와 복선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소재다.

작가.작곡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관객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느냐에 있다.

우리 것으로 충분히 소화해낸 새로운 음악극 양식을 만드는 것 또한 이땅에서 오페라를 작곡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골치아픈 과제다.

'아라리 공주' 는 사랑과 죽음, 전쟁과 용서 등 매우 극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비교적 덜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발굴해내 영.호남의 화합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고 참신한 소재였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보완할 점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극적인 분위기의 전달에서 오케스트라의 활용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합창과 무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피날레를 제외한 모든 막 (幕)에서 합창으로 끝냄으로 해서 뒤로 갈수록 극적인 긴장감이 감소되었다.

막이 오른 후 으레 나오는 허밍 코러스가 빚어내는 신비로움은 관현악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효과다.

제3막의 전쟁 장면 등 합창이 부각되는 부분과 제2막의 신라의 유달장군이 아라리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아리아 '이 가슴 불태워…' 나 제4막에서 파을백과 아라리 공주의 상봉장면에 나오는 사랑의 2중창과 아리아는 기억에 남을 만했다.

하지만 피날레 직전에 아리아의 형식을 제대로 갖춘 노래들이 뒤늦게 등장해 아쉬웠다.

또 오케스트레이션에서도 중저역 금관악기를 너무 두텁게 사용해 다양한 음색의 구사를 통한 극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다.

장면마다 음악양식의 통일성이 결여돼 음악이 흐르지 않고 답답하게 끊어지는 느낌을 주었다.

서사적인 줄거리를 쫓아가는 것에 그치지 말고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갈등을 음악으로 묘사한다면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었을 것이다.

합창의 비중이 너무 커 주역가수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지만 아라리 공주역의 소프라노 김성은, 파을백역의 테너 강무림은 탄탄한 연기와 호흡으로 오페라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달이 (소프라노 이소연) 와 돌개 (테너 김재형) 등 조연의 활약과 공간을 충분히 활용한 무대장치도 돋보였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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