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빈민촌 불법체류가 삶다룬 영화'증오' 내일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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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마티유 카소비츠. 67년 파리 태생. TV영화감독과 영화편집자 부모를 둔 영화광으로 12세때 수퍼 8㎜로 단편영화를 만들다.

17세때 고교 중퇴, 영화현장에 뛰어들다.

78년 배우로 데뷔. 93년 기존 프랑스영화의 주된 흐름에 반기를 든 장편 '혼혈아' 를 감독, 단번에 국제적인 주목을 끌고 '증오' 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다.

헝가리에서 이주한 유대인 2세인 그는 "사회는 자신에게 걸맞는 범죄들을 얻는다" 는 신념으로 사회의 문제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영화들을 만든다.

부르조아적인 사랑이야기보다는 부르조아들을 놀래키는 영화로 충격을 던지는 것이다.

프랑스는 동화속의 그림같은 샤토 (성) 와 우아한 살롱이 열렸던 멋진 건물들로만 가득찬 '낭만과 예술만의 나라' 가 아니다.

프랑스에도 당연히 어두운 구석이 있다.

그곳에서 떠도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증오에 차있다.

'관용 (tolerance)' 을 그들의 자긍심으로 삼는 사회주의적 나라 프랑스는 아프리카등을 오랫동안 식민통치 해왔다.

과거 프랑스에는 사하라 이북의 아랍인들과 이남의 흑인들이 종주국에 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대거 이주해 왔다.

프랑스정부는 문제가 많은 이들을 '격리수용' 하기 위해 퐁피두 집권때 대규모 거주시설을 조성했다.

'시테' , 'HLM' 이라고 불리는 이곳이 그들이 대도시에서 쫓겨나 방리유 (교외)에 형성한 빈민촌이다.

인종.사회 문제를 잘 다뤄 '프랑스의 스파이크 리' 라고 불리는 젊은 감독 마티유 카소비츠의 영화가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8일 개봉되는 '증오' 가 그것으로 빈민촌 절은이들의 24시간동안의 행적을 엮은 이 영화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현대 프랑스의 사회문제를 자연스럽고 명쾌하게 요약하고 있다.

경찰들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이 빈민촌에는 불법체류자들의 2세들이 이제 거의 성년이 되어 뛰어 놀고 있다.

그곳엔 프랑스의 자랑거리인 선진 문화 대신에 뉴욕의 할렘처럼 스프레이 낙서와 브레이크 댄스가 난무할 따름이다.

건물 옥상에서 핫도그나 구워 먹으면서 잡담을 늘어 놓는 그들의 대화는 그 자체가 랩 음악이나 다름없다.

그 언어들은 '착한' 파리지엥들은 잘 알아 듣지 못한다.

'카페' 를 '페카' 라고 하거나 '메르시' 를 '시메르' 라고 하는 식이다.

종주국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자랑하는 언어들을 '짜가' 라며 조롱한다.

단어 사이사이에 상존하는 욕설들과 함께 '그들만의 말' 을 통용시키는 것이다.

그 말들을 쉴새없이 떠벌이는 3명의 주인공들은 중산층이 결코 가까이 해선 안될 불량한 녀석들이다.

백인이면서도 차별을 당하는 유대계 프랑스인, 노예처럼 수탈을 받아온 아랍인의 한 후예, 통념에 어긋나게도 사려깊고 균형잡힌 아프리카 흑인. '증오' 와 마찬가지로 인종적 대립과 편견을 까발린 작품들을 내놓은 미국의 스파이크 리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흑백의 적대감을 제시하고 있으나 카소비츠는 프랑스를 구성하는 세 부류의 소외된 집단을 그들 사이의 연대감을 매개로 보여준다.

세 친구들이 24시간 동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알레고리를 형성하며 곱씹을수록 재미있게 등장하고 통쾌하게 조롱받는다.

나아가 증오의 대상이 된다.

빈민들을 동물원의 원숭이들처럼 취재하는 방송기자, 허위의식으로 가득찬 전위 미술 전람회,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제멋과 마약에 탐닉한 미치광이, 아무 의미없는 이야기를 숨가쁘게 지껄여대는 아랍계 꼬마,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나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노인, 파리 시외에서는 고문을 자행하지만 시내에서는 친절한 경찰, 주인공들을 위해 경찰을 막아주는 파리의 술취한 거렁뱅이. 무뇌아같은 스킨헤드족 등. 결국 모든 등장인물들은 "50층 건물에서 떨어지면서도 '지금까지는 괜찮아, 추락하는 것은 중요치 않아, 어떻게 땅에 떨어지는냐가 문제지' 라고 되뇌이는" 절망을 '증오' 한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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